2015. 11. 2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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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든을 비롯한 헌터킬러들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저그의 여왕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헤이든의 일기장은 역사적인 사건들이 많이 다루어져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일기장은 결코 역사책은 아니었다.

헤이든의 일기에는 그 자신에 관한 글들과 동료들에 관한 일상적인 글도 많이 있었다.

 

헤이든은 여전히 클레이와 함께 일기장을 읽고 있었다.

 

클레이는 어떤 부분에서는 다 아는 내용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또 다른 어떤 부분에서는 전혀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고는 놀라서 같은 부분을 자꾸 다시 읽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들의 눈은 어느 한 줄에서 멈추었다.

 

 

2500413

 

어제 코헨이 죽었다.

 

 

그 한 줄짜리 일기에는 다른 부연 설명은 없었다.

그러나 그 한 줄은 가장 친한 벗을 잃은 헤이든의 참담함을 보여 주기에는 충분했다.

 

클레이가 들고 있던 일기장은 어느새 헤이든의 손으로 넘어가 있었다.

헤이든은 일기장을 넘기지 않고 있었다. 그는 단지 과거를 회상하고 있었다.

 

 

2500412일의 일이었다.

 

케리건은 초월체의 가장 강력한 대리인으로 재탄생했다. 하지만 그녀의 힘은 아직 완전히 각성하지 못했다.

유령 요원이었던 시절에 그녀에게 심어진 신경 제어 장치가 그녀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케리건은 테란의 사이언스 배슬 아메리고(Amerigo) 에 잠입했다.

 

그녀의 목표는 아메리고 호의 슈퍼컴퓨터에 접근해 테란 유령에 관한 폐기된 문서를 빼돌리고,

그녀의 힘을 제한하고 있는 신경 제어 장치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정신체 자즈는 개인적인 행동을 하려는 케리건을 책망했다.

하지만 케리건을 신뢰했던 초월체는 그녀를 보내라고 했다.

 

케리건은 다고스가 제공한 가장 잘 죽이는 이들을 데리고 함선에 잠입했다.

몇몇 저글링들, 그리고 헌터킬러 헤이든과 코헨이 이 임무에 동원되었다.

 

결국 케리건은 원하는 기록을 찾아냈다.

헤이든은 이제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겠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케리건은 뜻밖의 명령을 내렸다.

 

헤이든, 그리고 저기 있는 셋은 나를 따라 함선을 나가서 군락지로 되돌아간다.”

 

헤이든은 그럼 코헨이랑 나머지 저글링들은?’ 이라고 생각했다.

케리건의 다음 한 마디가 그 궁금증을 해결해 주었다.

 

나머지는 함선에 남아 있는다. 추가로 접근할 테란 병력을 처리하는 것이 너희의 임무다.”

 

헤이든은 코헨을 두고 함선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코헨은 당황한 친구에게 텔레파시로나마 따뜻한 말을 건넸다.

 

걱정하지 마, 친구! 늘 그랬듯이 살아 돌아올 테니까!’

 

 

그 몇 마디를 끝으로, 코헨은 돌아오지 못했다.

 

헤이든은 코헨이 돌아오지 않자 아메리고 호로 다시 향했다. 그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금세 알 수 있었다.

 

헤이든이 함선을 빠져나가 집에 돌아간 직후에,

테란은 아메리고 호가 감염되었다고 판단하고 폭파 전문 기술자와 소수의 병력을 접근시켰다.

 

하지만 그들은 코헨을 포함한 매복해 있던 저그와 맞닥뜨렸다.

 

그러자 테란은 폭발물을 폭파시키고 함선, 그리고 저그와 함께 폭발하는 자폭을 감행했다.

 

헤이든은 폭발한 함선의 잔해 속을 뒤졌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헤이든의 다음 일기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휘갈겨 쓴 글이었고, 몇몇 글자들은 번져 있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2500416

 

예전에 코헨은 가끔씩 이런 열변을 토하곤 했다.

아마 나에게만 이야기했었을 것이다

 

그때그때 세부는 달랐지만 보통 이런 이야기들이었다.

 

이봐 친구, 생각해 봐. 우주는 무지하게 넓고 아무리 생명체의 숫자가 많아도 먹고사는 데에 부족함이 없어!

부족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풍족하다고도 할 수 있을걸?

 

물론 옛날옛날에는 부족했을 수도 있지. 한두 행성에 붙박이로 있었을 테니까.

 

그렇지만 이제 우리는 어마어마하게 넓은 구역을 장악했고

생명이 살 만한 행성은 충분히 널려 있어! 우리 모두가 풍족하게 살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우리는, 테란 프로토스 저그는 허구한 날 이렇게 쓸데없이 치고받고 싸우고 있어!

따지고 보면 엄청 웃긴 짓이지!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는데도 더 가지고 싶어서, 남의 것을 뺏고 싶어서 싸운다고. 대체 이게 무슨 꼴이람?

 

난 싸우기 싫어. 전쟁이 싫어.

사실 나도 이미 많은 생명을 죽였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나 모르겠다만, 어쨌든 싫어.

 

너는 군단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희생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나는 잘 모르겠다.

뭐 어쨌든 각자 생각은 다를 수 있으니까.”

 

뭐 이런 식의 이야기였다.

 

그 친구 말마따나 나는 전투를 즐겼고, 그래서 그런 말들을 별 생각 없이 흘려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그 녀석이 없는 지금은 절실히 깨달았다.

정말이지 지금 우리는 뭘 하고 있는 걸까?

 

그 친구 말대로 우린 모두 부족함 없이 지낼 수 있다. 물론 우리 헌터킬러가 상대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고 있고,

그래서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우스울 수도 있다.

 

그래도 다른 저그라던가, 때때로 다른 종족의 군인이나 민간인들의 생활도 많이 보았다.

결론은, 이렇게 쓸데없이 싸우지 않는다면 다들 그런대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나는 가장 소중한 친구를 잃은 뒤에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그 친구가 내 옆에 있을 때 백날 이야기해 줘도 이해를 못 했으면서, 이제 와서 이러고 후회하고 있다.

 

오늘 이렇게, 서로 싸우고 죽일 이유도 의미도 없다는 것을 깨닫기 이전에,

나는 이미 너무 많은 생명을 학살했고 그들로부터 너무도 많은 것들을 빼앗았다.

 

이미 손에 너무 많은 피를 묻혔고 씻을 수도 없다.

 

마음만 같아서는 그 녀석을 따라가고 싶지만 그러기도 뭣하다. 그 친군 그런 허무한 결말을 바라지 않을 거다.

 

그렇다고 평생 죄책감을 안고 우울하게 살아가지도 않을 것이다.

 

그 녀석이 원했던 평화를 내가 대신 만들어 놓는 편이 가장 좋겠다.

확실히 그게 가장 낫겠다.

 

생각으로만, 말로만 평화를 떠들어대지 말고 행동으로 실천해야겠다.

 

너무 거창한 계획 같지만 못할 것도 없다.

 

우주의 아주 작은 일부, 작은 행성 한 곳에서라도 다양한 종족이 공존하는 그런 평화를 이룰 수만 있다면

 

난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을 것이다.

 

 

그의 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헤이든과 클레이는 이 글 뒤쪽의 글들은 비교적 대충 읽었다.

 

헤이든은 행복한 표정으로 말했다.

 

클레이, 나는 이제 그 친구가 바라던 것, 내가 결심한 것을 어느 정도는 이룬 셈인 것 같아.

 

며칠 전에 갑자기 나타나서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 프로토스가 좀 마음에 걸린다만…….”

 

 

 

 

 

 

 

 

 

Posted by 깜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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