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26. 16:17

13

 

헤이든의 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쯤에서 책을 덮었다.

클레이는 마저 다 볼 줄 알았는지 의아한 표정으로 헤이든을 쳐다보았다.

 

그런 클레이를 본 헤이든이 말했다.

 

그 뒤의 이야기는 너도 잘 알잖아. 마저 볼까?”

 

어느새 약간은 웃음을 되찾은 클레이가 말했다.

 

괜찮아요.”

 

원래 차 행성에서 살던 그들이 이 행성으로 오게 된 경위는 이러하다.

 

 

케리건이 부화한 뒤에도 헌터킬러들은 그녀의 명령에 따라 다양한 임무에 참여했다.

 

2500427, 초월체가 이끄는 대규모의 저그 군단이 아이어를 침공했다.

 

아이어 침공 당시 케리건은 다른 저그 무리들처럼 아이어로 가지 않고

차 행성에서 대기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헌터킬러들의 경우, 몇몇은 케리건 곁에 머물러 있었지만 나머지는 아이어로 파견되었다.

 

이런 종류의 전투에 능했던 헤이든은 그 날 다른 헌터킬러 둘과 함께

아이어의 안티오크 지방으로 파견될 예정이었다.

 

안티오크 지방은 집행관 아르타니스와 치안관 피닉스가 방어하는 중요한 지역이었고,

때문에 헌터킬러들 중에서도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이들이 파견될 것이었다.

 

헤이든은 먼 원정을 나갈 때 자신의 일기장을 꼭 챙기곤 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또 헤이든은 클레이도 데리고 갔다.

 

그들은 정해진 차원 입구를 통해 아이어로 가야 했다.

 

그날따라 그들은 길을 잘 찾지 못하고 헤매었다. 차원 도약을 위한 입구들은 물론이고

가까운 지역을 이동하기 위한 땅굴벌레들이 꽤 복잡하게 얽혀 있다 보니 그럴 만도 했다.

 

몇 시간 뒤 그들은 찾던 것과 비슷해 보이는 입구를 발견했다.

 

클레이는 왠지 여기가 아닌 것 같다며 의심했다. 이동하는 동료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헤이든은 그들이 헤매는 동안 이미 다른 저그들이 아이어로 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단 가 보자! 아이어가 아니라도 뭐 어때?”

 

그들은 곧 차원 여행을 시작했고, 광속보다 더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니 얼마 안 가 도착했다.

 

그런데 그곳은 아이어가 아니었다. 대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곳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고요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이 이야기의 중심 무대인, 작고 아름다운 외딴 행성이었다.

 

클레이는 제가 아닌 것 같다고 했잖아요!” 라며 볼멘소리를 했지만 헤이든은 듣지도 않더니,

갑자기 환호성을 질렀다.

 

클레이는 생각했다.

 

친구를 잃고 힘들어하시더니정신이 살짝……. 에휴, 나도 마음이 아프네.’

 

좀 진정이 된 헤이든은 말했다.

 

클레이, 걱정하지 마. 나 안 미쳤어. 그냥 행복한 거야!”

 

그들은 잠깐 동안 경치를 넋놓고 감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클레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어떻게 돌아가요?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누가 사는 건지도 모르겠고, 아무것도 아는 게 없잖아요.”

 

헤이든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말했다.

 

네 말이 맞아. 우린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감이 안 잡히고 있지. 그렇긴 하지…….”

 

평소에는 클레이가 해맑았고, 헤이든이 차분하고 생각이나 걱정이 많았는데 그 때는 정반대였다.

말끝을 흐리던 헤이든이 말했다.

 

근데 우리가 뭐 하러 돌아가?”

 

헤이든은 속사포처럼 말을 이었다.

 

원래대로 아이어에 가서 프로토스 죽이고, 우리도 죽고, 그러고 있으려고?

그냥 여기서 살자! 먹을 것도 널렸고, 얼마나 좋냐?

 

그리고 난 이제 전투에는 질렸어! 지금까지만 해도 너무 많이 부수고 죽였거든.

게다가 네 말대로 당장 돌아갈 방법도 없잖아.

 

맘 편하게 여기서 지내자고!”

 

처음에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하던 클레이는 점점 헤이든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고,

평소처럼 낙천적인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그들은 그럭저럭 먹고 자며 즐겁게 지냈다. 헤이든은 함께 온 일기장에 일기도 썼다.

 

그들이 길을 제대로 찾아갔다면, 안티오크에서 피닉스를 첫 번째로 죽이는 데에 일조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일기장에 쓰여 있는 날짜대로라면,

59일에 그들은 오래 전부터 이 행성에서 살아 왔던 야생 저그와 처음 만나게 된다.

 

헤이든은 대다수의 저그 군단과 달리 오버마인드의 군체의식에 의해 지배받지 않았고,

클레이 역시 헤이든의 직속 부하였기 때문에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 둘은 야생 저그들과 금세 동고동락하게 되었다.

 

야생 저그들의 생활 방식은 저그 군단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들은 잘 몰랐지만 행성의 환경은 테란의 고향 행성인 지구와 흡사했고,

그래서 언젠가부터 이 행성에 살던 야생 저그는 테란과 비슷한 생활 양식을 가지게 되었다.

 

어쨌든 헤이든과 클레이는 곧 새로운 환경과 야생 저그들과의 생활에 적응했다.

 

그들은 군락지 내에서의 대소사에 함께했고, 그러다 보니 그 둘은 더 이상 낯선 이방인이 아니었다.

 

 

한편, 프로토스의 특별한 움직임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프로토스 함선이 행성에 착륙한 지 거의 1주일이 지났는데도 이상할 정도로 별다른 행동이 없었다.

 

함선이 착륙한 곳은 저그 군락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이었기에 서로 마주칠 일이 상대적으로 적기는 했다.

 

저그와 테란 모두 저 멀리 어딘가에 착륙해 있는 프로토스 함선만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그마저도 은폐장 때문에 몇몇만 볼 수 있었다.

 

헤이든과 클레이가 일기장을 읽은 날의 다음 날인,

 

2503628일 아침이었다.

 

알렉스는 마을 구석의 창고에서 쓸 만한 연장이 있나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그는 잡동사니들 사이에서 뭔가 좋아 보이는 것을 찾아냈다.

그가 주로 쓰는 종류의 도구는 아니었다. 그것은 웬 고글이었다.

 

알렉스는 고글을 끄집어내 먼지를 털어냈다. 그 고글은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였다.

그렇지만 그는 곧 그 고글이 평범한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의 테에는 탐지 고글(Detector Goggles)' 이라고 쓰여 있었다.

 

알렉스는 일단 고글을 들고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에게 그것을 흔들어 보였다.

 

창고에서 괜찮은 걸 건졌어요! 이게 뭘까요?”

 

가장 먼저 제이콥이 다가왔다. 그는 알렉스가 그랬듯이 고글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살펴보고, 써 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말 그대로 탐지 고글인 것 같은데? 은폐하거나 잠복한 것들 볼 수 있는 그런 거겠지.”

 

사람들이 삼삼오오 그들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그 중에는 레이아도 있었는데, 그녀는 고글을 보고는 말했다.

 

이거 내가 가져온 건데요? 창고에 있었구나……. 어디로 사라졌었나 했었습니다. 잠깐 저 좀 줘 보세요.”

 

알렉스는 레이아에게 고글을 넘겨주었다. 그녀는 고글을 써 보고는 뭔가를 찾았다.

잠시 후에 그녀는 고글을 도로 벗고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유령들이 쓰는 장비인데 탐지기 기능도 있습니다. 며칠 전에 왔다는 프로토스 함선이 저기 저쪽 먼 데 있어요.

이걸 쓰면 보일 겁니다.”

 

사람들은 차례로 고글을 써 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함선의 모습에 놀랐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크고, 멋지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냥 감탄만 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함선을 실제로 본 뒤 조금은 위협을 느꼈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갖가지 추측들이 나왔다.

 

그날 저녁에는, 헤이든은 클레이와 함께 군락지 근처의 들판으로 나갔다.

 

그곳에는 한 감시군주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베네딕트(Benedict)였는데,

이 행성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이들 중 하나일 것이다.

 

베네딕트는 둘을 보고는 선선히 인사했다.

 

안녕하신가, 헤이든. 클레이도 반갑네. 그러고 보니 이 쿠쿨자 친구는 며칠 전에 만났었군!”

 

헤이든과 클레이도 평범한 인사를 했다. 곧이어 헤이든은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베네딕트에게 말했다.

 

요즘 좀 불안합니다. 갑자기 프로토스까지 출몰했으니까요.

 

요전에 테란을 발견했을 때만 해도 다들 당황했었죠. 어떤 적대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우린 당연히 잘 지내보고 싶었으니까,

아시다시피 산책로에 통역하는 아이들 풀어놓고 마주치면 제 우호적인 편지를 전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다행히 이 테란은 대부분 민간인들이고 평화적이어서 잘 지내게 됐지만,

프로토스는좀 다를 것 같습니다.

 

좋게 말하면 애국심이 투철하고 나쁘게 말하면 오만한 족속이니까요.

 

그러고 보니 최근 몇 년간 이 행성에 이방인들이 자주 들어왔군요. 저 역시 원래는 다른 곳에 살았으니까요.”

 

헤이든은 멈추었다 말했다 하며 떠오르는 대로 그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베네딕트는 그저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는 말수가 적은 대신 어떤 이야기라도 잘 들어 주었다.

 

베네딕트는 단지 잘될 것이네. 우린 늘 방법을 찾아 왔으니까.” 라고 말했다.

어쨌든 그 짧은 대답은 헤이든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별일 없이 하루가 가고 그 다음 하루가 갔다.

 

71일 정오쯤이었다.

 

늦잠을 자서 아직 부스스한 이들도 있었고 이미 오래전부터 뭔가 하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어쨌든 아직까지는 평범한 일상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날 오후 3시에서 4시 정도였을 것이다.

 

샬롯이 타키온과 마주친 그 산책로의 한복판에 무언가가 소환되었다.

 

소환된 것은 어떤 프로토스였다.

 

 

 

 

 

 

 

 

 

 

 

 

 

 

 

 

Posted by 깜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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