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 2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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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 친구 이야기에 많은 페이지를 바쳤다.

 

재미있는 이야기였기를 바란다.

 

이런, 이렇게 말하니 꼭 이야기가 끝난 것 같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기껏해야 내가 열다섯이 됐을까 말까 하던 때이다

그러니까 대충 생각해도 10년이 넘게 남은 것이다.

 

여기 적는 몇 가지 외에도 재미있고 일상적인 사건들은 엄청나게 많다.

가볍고 통통 튀고 유쾌한 일화들 말이다.

그렇지만 그걸 다 풀어내자면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는 조금은 중대한 사건으로 넘어가겠다.

 

어쩌면 무거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2498년이었다.

 

나는 여전히 마을에 살았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마을에는 처음 온 그 날 후로 새로 오거나 나가는 아이는 없었다.

 

선생님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몇 번 바뀌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마을에 상주하는 교사는 필요가 없어졌고 실제로도 없어졌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계속 이 마을의 주인이었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다. 내 기억대로라면 이때쯤 60명 모두가 성년이었을 것이다. 나는 22.

 

우리는 학력도 만들었다. 그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또 재미도 있었다.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했을 뿐인데 덤으로 그럴듯한 증서까지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의 학생들과는 조금 다른 과정을 거쳤다.

 

어딘가에 출석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거의 온라인 강의를 이용했다.

 

썩 훌륭한 복지 국가라고 할 수 없는 나라의 그저 그런 공립학교보다는,

그런 국가임에도 웬일인지 특별히 많은 투자를 한 이 특별한 마을의 시설이 훨씬 나았다.

 

굳이 보통의 학교생활을 감내하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의 마을은 충분히 훌륭했다.

 

대학 과정부터는 약간 변화가 생기긴 했다.

 

우리는 모두 타소니스 대학에 들어갔다

그곳은 테란 연합의 대학 중에서 가장 평판이 좋고 명망 있는 교육 기관이었다.

 

대학에 들어간 후로는 통학하며 출석했다. 다행히 대학이라는 곳은 그 이전의 학교들과는 많이 달랐다

이곳 타소니스 대학의 사람들은거의 다 동족이었다.

 

게다가 대학은 연구 시설이 너무나 훌륭했다!

인공 블랙홀을 비롯해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런 말을 하니 에이든의 노래 한 곡이 생각난다. 제목이 수학은 아름다워였다

희망적으로 시작했다가 우울해졌다가 다시 즐겁게 끝나는 노래였다.

 

그렇게 우리는 학위를 쌓아 갔고 박사라는 호칭을 듣고 다니는 사람이 점점 늘어났다.

 

 

좋은 시절이었지만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었다.

 

우리가 타소니스 이전에 살던 곳은 꽤 다양했다.

 

그런데 어디에서 왔던 간에 아주 이상하게도 우리는 다시는 가족을 만나지도 

예전에 살던 곳을 찾아가지도 못했다.

 

당연히 우리는 이상하게 여겼다. 하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뭐라도 시도해 볼 수 있었긴 하다. 우리에게는 그런대로 자유가 있었고, 정보를 찾아 볼 수 있었다

원한다면 직접 찾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시도해봤다.

 

하지만 우리는…….

유라의 말이 가장 깔끔하니 옮긴다.

 

알려고 하면 안 될 것 같단 말이지.”

 

 

우리는 여행도 많이 다녔다.

여행, 관광, 휴양, 유학, 연수, 견학 등 다양한 용어가 들어맞는다.

 

2498년에는 우모자 보호령을 여행했다. 몇 달 간의 제법 긴 기간 동안이었다.

 

그전까지의 여행 경비는 대개 세금에서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 특별한 여행은 사비로 갔다.

 

비용 마련은 아주 쉬웠다.

 

우리는 넉넉한 수입이 있고 원래는 그것만 가지고도 잘만 살 수 있다.

그런데 우린 그 돈도 별로 쓸 일이 없어서 일관적으로 저축을 해 왔다.

 

단순히 통화를 저금하기도 했고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실물 자산을 사들이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썼지만 하여튼 쌓아 뒀다는 점은 똑같았다.

 

그러니 어마어마한 재산이 축적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안 그럴 수 있는데 굳이 왜 각자의 재산을 떼어 내서 갔는지 궁금하다면,

그건 여행지가 우모자이기 때문이었다.

 

특정 귀족 가문들 중심으로 돌아가는 어디와는 다르게,

 

공정하고 민주적인 정부인 우모자 통치 의회를 최고 기구로 둔 우모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코프룰루 구역 테란으로서는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이다.

 

공업화로 자연환경을 완전히 말아먹은 어디와는 다르게,

 

낭비를 지양하는 의회의 철학으로 우모자의 자연은 잘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보호령과 연합이 애매한 관계일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는데, 이것은 좀 나중에 얘기할 것이다.

여행 이전에는 모르고 있었던 사실들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우리가 우모자에 나라의 돈을 떼어서 연수를 가겠다고 하면 허가가 안 날 수도 있고

가더라도 제약이 있는 여행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최고로 자유로운 여정을 위해 스스로 비용을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기대한 대로 여행은 자유로웠다.

 

타소니스에서 우모자로 떠날 때, 그리고 우모자에서 타소니스로 돌아올 때.

이 두 번의 이동은 다 같이 움직였다. 근사한 우주선을 빌려서 말이다!

 

그 이동을 제외한 다른 여정은 개인적으로 알아서 했다.

우모자는 치안이 좋았기 때문에 혼자 돌아다닌다고 안전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같이 다니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었겠지만

특히 이런 때에는 너무 함께 있으면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홀로 계획해 홀로 여행하는 것을 기본으로 했다.

 

하지만 종종 연락하며 소식을 나누고 유용한 정보를 공유하거나 

때로는 직접 만나서 한두 군데쯤 함께 방문하기도 했다.

 

가끔씩 마주치면 더 반갑게 마련이니까.

 

 

우모자 보호령은 수도성 우모자와 몇 개의 위성 및 기타 거주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주로 우모자 본성을 여행했다.

 

우모자는 그 옛날 지구처럼 또 현재의 내가 사는 행성처럼 꿈같은 자연의 아름다운 행성이었다.

 

마을은 외곽 지역이어서 그런대로 환경이 깨끗했기에 엄청난 차이를 느끼지는 않았다

새로운 환경이라는 것은 실감이 났지만.

 

만약 대도시에서 살다가 이런 곳에 온다면, 예를 들어 수도인 타소니스 시 같은 곳이라면

정육면체까지만 알다가 초입방체를 접하는 기분일 것이다.

 

적갈색과 주황색의 깨끗한 하늘은 방문자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문득 희미한 향신료 냄새가 난다는 것을 깨닫자 더욱 즐거웠다.

 

이 천연 향신료는 여러 요리에 쓰이고 있었다.

 

평화로운 초원과 평원에서는 토착 생물들이 뛰어다니는 것을 볼 수도 있었다.

 

나는 알차게 여행을 즐겼다.

 

이런저런 맛좋은 요리들도 즐겼고,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서 휴식하며 평화를 누렸고

괜찮은 기념품이 있으면 사기도 하고, 뭔가 의미를 찾을 만한 장소들도 찾아다녔다.

 

우연히 파인애플 사탕을 발견하고 격렬히 기뻐하기도 했다!

 

대학교나 연구소도 여러 곳 탐방했다. 그런 방문은 재미도 있고 유익하다

그런 방문 덕분에 많은 것을 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한 곳에서…….

 

우모자 보호령 여행에서 가장 중대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Posted by 깜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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