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8. 28.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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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내 이름부터 명확히 해야겠다.

 

내 이름은 그레이스 쿠퍼(Grace Cooper).

 

나는 2476년에 코랄 IV에서 태어났다. 짧게 코랄이라고 불리곤 하는 곳이다.

 

코랄은 과거에 타소니스 출신 정착민들, 즉 테란 연합이 건설한 식민지였다.

 

코랄은 곧 테란 연합의 핵심 행성 13개 중 하나가 되었으며,

발전된 과학과 연구 시설로 연합의 군사 및 기술적 진보에 많은 공헌을 했다.

 

하지만, 다른 핵심 행성들과 마찬가지로 코랄 IV 역시 하나의 피지배 행성일 뿐이었다.

그것도 부패한 타소니스의 오래된 가문이 지배하는 테란 연합에 속한 행성이었다.

 

 

나는 코랄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나의 유년기는 행복했다. 행복했다고 추억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객관적으로 충분히 좋은 유년기를 보냈다.

 

생존을 위협받을 일이 없었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아였다는 것이다.

 

나의 가족들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가족과의 기억들은 내 머릿속에 잘 저장되어 있다.

지금도 종종 잠들기 전에 이런저런 기억들이 떠오르는데,

그런 때에는 말랑말랑한 감정들도 함께 찾아온다.

 

가족들에 대해서는 여기에 자세히 쓰지 않겠다.

 

좋은 추억이기 때문에 기록으로 남기고 싶지 않은 내용들이 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여행지에서 열심히 기록을 한다고 해서,

늘 가장 중요한 순간을 기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깨닫고 애석해하는 충실한 기록자들도 있다.

 

그저 나의 가족은 이 정도로만 정리하고 싶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 곧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유년기에 얻은 귀중한 자산이 있다면 그것은 혼자 놀기.

이 혼자 놀기를 기이할 정도로 발전시킨 덕에 훗날 큰 도움을 받았다.

 

나는 또래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몇몇 괜찮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어쨌든 나는 친구와 놀 일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친구가 많든 적든 행복할 수 있다. 혼자 있어도 충분히 재미있게 살 수 있다.

 

게다가 어차피 나는 진정한 혼자가 아니었다. 나에게는 든든한 가족이 있었기에

또래 친구가 좀 적다고 한들 심각한 외로움을 느낄 일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외로우면 또 어떤가. 고독에도 분명 좋은 점이 있다.

 

이제 내가 어떠한 혼자 놀기를 즐겼는지 몇 가지를 소개해 봐야겠다.

 

 

가장 즐거운 오락 중 하나는 우주 지도를 그리는 것이었다.

 

나는 우주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우주를 비롯한 거대한 세계들에 관심을 가졌고 동경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소소하게 흙바닥에 별들을 그리며 놀았다.

모래나 흙 위에 돌이나 나뭇가지 같은 것들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많은 어린이들의 소일거리인 것 같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기계의 도움을 받아 고차원의 화면에 시각화된 우주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것들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지도를 방 안에 펼쳐 놓고 그 안을 돌아다니면서 천체들을 톡톡 건드리는 것은 아주 재미있다.

 

 

몹시 즐거운 놀이가 또 있다. 얼핏 보면 별것 아니다.

생각하기. ‘상상하기라고 해도 좋다.

 

우주 지도 안에서 돌아다니는 것이 재미있는 것도 상상을 하기 때문이다.

 

그냥 지도를 보고만 있는 것도 그런대로 즐거울 수 있겠지만 상상력과 함께하면 훨씬 더 재미있다.

 

아름다운 행성들과 특별한 환경의 행성들,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을 인간들 혹은 신비한 외계 생물들의 이야기를 상상하다 보면

많은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놀라기도 한다.

 

생각하는 것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도구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굳이 필요한 것이 있다면 건강한 뇌 정도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상적인 세상에 대해 많은 생각과 상상을 거듭했었다.

 

그리고 상상하던 세상을 실제로 만나게 되었다.

상상하던 그런 세상이 맞을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확인해 볼 일이지만, 맞을 것이다. 그러면 좋겠다.

 

옛 명언 중에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라는 것이 생각난다.

오랫동안 유토피아를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유토피아에 살게 된다라고 변형하면 내 상황에 딱 맞으려나.

 

이것들 외에도 혼자 놀기의 방법은 참 많다.

 

 

2489, 내가 13세였던 때였다.

 

2489년의 어느 날에…….

 

그날도 나는 눈을 감고 상상의 세계에 들어가 있었다.

 

나는 집 근처의 한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 벤치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벤치였다.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그 벤치에 앉아 있으면 더 기발한 상상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런 곳이 몇 군데 있다.

 

그날은 마침 날씨도 무척 좋았다. 나는 비타민 D도 합성할 겸 해서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레이스 쿠퍼!”

 

누군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제법 큰 목소리로 내 이름이 불리자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아마도 그 사람은 나를 여러 번 불렀을 것이다. 짜증날 정도로 많이 불러야 했을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꼬마야, 자니? ? 이봐, 내 말 들려? 눈 좀 떠 봐! 그레이스 쿠퍼!”

 

그렇지만 정말로 무시했던 건 아니었다. 뭔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

특히 다른 세계에 여행을 가 있을 때는 여러 번 불러도 못 들을 때가 있다.

 

다행히도 그 사람은 내가 정말 못 듣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사람이다.

 

어쨌든 내 이름을 듣고 화들짝 놀라서 순간적으로 경련을 일으키면서 눈을 떴을 때

내 앞에 있던 사람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내 이름을 불렀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 사람은 성인 남성이었고 키가 컸다. 그는 나에게 아주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무슨 생각을 하던 거니? , 우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구나.”

 

이 사람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맞히자 더욱 흥미로웠다.

 

그러나 나는 일단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낯선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친절하게,

그것도 어린 아이에게 말을 걸어온다면 조심해야 한다는 것쯤은 의식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나를 안심시키려는 투로 이렇게 말했다.

 

이런,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그렇게 굳어 있지 않아도 괜찮아.”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타소니스? 타소니스 구경시켜 줄까? 타소니스에 가 보고 싶지 않니? 날 따라오렴.

내가 맛있는 것도 사 주고, 실컷 구경시켜 줬다가 다시 이리로 데려다 줄게. 어때, 재밌겠지?”

 

마침 나는 타소니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타소니스는 당시 테란 연합의 수도성이었다.

그때까지 타소니스에 가 본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언젠가 구경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Posted by 깜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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