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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 <지하생활자의 수기>, <죄와 벌>

이미지 출처: 알라딘 (aladin.co.kr)

 

 

 

 

여름 계절학기 수업도 종강을 하면서 갑자기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공연히 웹서핑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책을 읽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요 며칠 동안 여러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 중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지하생활자의 수기>와 <죄와 벌>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죄와 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같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대작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라고 합니다. 이후 소설들에 등장할 모티프들이 많이 담겨 있다고 하네요. 확실히 '죄와 벌'을 읽다 보면 '지하생활자의 수기'의 어떤 부분이 연상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 소설은 분량이 아주 길지는 않으며 1부와 2부로 되어 있습니다. 1부는 전체가 주인공(지하생활자)의 독백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을 보면 스스로도 혼란스러워하고 오락가락하는 데가 있어서 처음에는 말하려는 바를 알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가 체르니셰프스키의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반박으로 이 글을 썼다는 것을 고려하면 1부에 담긴 주장이 무엇인지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지하생활자는 모든 인간에게 무엇이 이로운지 깨우치게 함으로써 모두가 이타적으로 행동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이상을 '수정궁'이라 표현합니다. 그는 '수정궁'과 같은 완성된 이상 사회에서 개인은 기계의 부품이나 사소한 물건 같은 존재로 전락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마음대로 행동하고 싶어하는 의욕이 있으므로 그런 사회를 건설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이와 관련이 있는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보다도 만약에 인간의 이익이란 것이 자기에게 유리한 것보다는 불리한 것을 원하는 데 있다고 하면 어떨까? (…) 자기 자신의 자유로운 의욕, 아무리 엉뚱한 것일지라도 하여튼 자기 자신의 변덕, 미치광이 같은 것이라도 좋으니 하여튼 자기 자신의 공상 ― 이것이야말로 세상 사람이 간과하고 있는 가장 유익한 이익이다."

 

1부의 마지막에 그는 진눈깨비를 바라보며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과거 이야기가 2부의 내용이 됩니다. 2부의 줄거리는 한두 문장으로도 요약될 수 있습니다. 아주 간단하게는 대략 '자신을 반기지 않는 동창회에서 행패를 부린 후 리자라는 여자를 모욕한 이야기' 정도가 되겠네요. 그러나 지하생활자의 복잡한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 볼 수 있기 때문에 전체를 읽어 볼 가치가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알라딘 (aladin.co.kr)

 

 

 

 

<죄와 벌>은 분량이 600쪽이 넘지만 그래도 시간을 내어 다 읽어 보기를 잘한 것 같습니다. 이야기 자체가 생각보다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인물들의 관계 및 서로 연결되는 일련의 사건들을 읽다 보면 흥미로운 데가 많습니다. 역시 분량은 조금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었지만, 의식적으로 장편 소설 읽기를 즐기려 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인터넷 여기저기의 자극적이고 짤막한 글에 너무 많이 노출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특히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왜 소냐와 동생들을 도와준 것인지가 궁금합니다. 그런 행동이 없었더라면 아마 그에 대한 인식은 '사상이 이상한 호색한' 정도로 끝났을 것입니다. 아내가 있는데도 주인공의 여동생 두냐를 유혹하며 곤란하게 만든 인물이었으니까요. 또한 그가 하는 말을 보면 가치관이 불건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좋은 방향으로 돈을 쓰는 장면을 보니 이 인물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더 해 보게 되었습니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살해 동기에 영향을 주는 대화가 등장하는 페이지입니다. '죄와 벌'을 소개하는 텍스트에 곧잘 등장하는 유명한 부분들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원래 타깃이었던 알료나만 죽이는 데서 끝내지 못하고 무고한 목격자인 리자베타도 살해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혼란에 빠져서 훔친 금품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죠. 그가 이 대화 내용처럼 알료나만 죽이고 그녀의 재산을 어디 좋은 곳에 썼다면 그의 범죄에 대한 인상이 조금은 달랐을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물론 제가 보고 있는 것이 뉴스였다면 '어쨌든 사람을 죽이다니 아주 나쁜 일'이라고 결론짓겠지만, 소설을 읽을 때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해 볼 수도 있는 것이겠죠. 그래도 이후 라스콜리니코프의 상태가 어떻게 되는지를 생각해 보면 역시 죄는 죄인 것 같습니다.

 

 

 

 

 

 

 

 

실행은 전혀 다른 문제가 되겠지만 이런 식의 사고 실험은 당시 러시아에서 흔하게 있었다는 것 같습니다. 여러 사상이 떠오르던 시기였죠.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자수를 권유하는 인물이 크게 둘 있는데 '소냐'와 '포르피리'입니다. 소냐의 삶의 이력과 그녀의 깊은 신앙심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포르피리가 라스콜리니코프를 압박하는 방식도 근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