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방학에는 교보문고 전자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면서 신착 자료들이 들어오는 것을 몇 번 볼 수 있었습니다. 일반 전자책도 많이 들어왔지만 처음으로 오디오북이 들어오기 시작해서 아주 눈에 띄었습니다. '페스트'의 초반 부분을 들어 봤는데 퀄리티가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무언가 영상을 보는 건 몰라도 책 내용을 듣기만 하는 것에는 그다지 취미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책을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지역 도서관에 가서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것을 빌렸습니다. 빌려온 김에 오디오북과 몇 부분을 대조해 보니 모든 문장을 읽는 건 아니었지만 핵심적인 부분은 모두 살리면서 딱 흥미로울 정도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었습니다.
'페스트'를 읽기 전에는 ‘킹덤’ 같은 아비규환을 상상했는데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정도가 좀 덜한 예를 들자면 중세 유럽에서 페스트가 돌 때의 덜 발전된 모습도 상상이 되었습니다. 의사들이 새 부리처럼 생긴 옷을 입었던 시기 말이죠. 하지만 '페스트'의 이야기는 그런 모습 또한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코로나19 사태와 비슷해 보였습니다. 꽤나 현대적인 모습이었던 것이죠. 작가의 생몰연도를 보니 이해가 갔습니다(1913년에서 1960년). 덕분에 카뮈가 생각보다 훨씬 최근 사람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서술자가 작품 속에 있는 현실 사람 같은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구체적인 이름이 등장하지는 않아서 궁금했습니다. 아주 후반부에 누구인지 밝혀집니다. 그때쯤 되면 슬슬 예상도 가능해지죠.
저에게는 랑베르가 특히 인상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연인을 만나러 가기 위해 밀수꾼들과 접선하여 폐쇄된 도시에서 탈출하려 합니다. 그러나 후에 마음을 바꾸어 전염병의 확산을 막고 환자들을 치료하는 봉사대에 합류합니다. 봉사대의 주축이자 이 소설의 주인공인 의사 리외의 태도도 기억에 남네요. 그는 종교도 없고 특정 이데올로기를 지지하지도 않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성실하게 의사로서의 의무를 다합니다. 자신은 사람들의 건강을 바랄 뿐이라면서요. 멋진 이름이 붙은 설명도 좋지만 때로는 이런 담백한 동기야말로 멋지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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