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애리얼리 부의 감각'은 돈에 대한 중요하지만 모르거나 잊기 쉬운 사실들을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책입니다. 저는 기회비용 이야기에 주목했습니다. 소비를 하면서 기회비용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생각해 보는 경우는 많지 않고, 다른 종류의 상품들끼리 비교해 보는 일은 더 적습니다. 그러나 이건 아주 유용한 사고방식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어느 날 30,000원짜리 테디베어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고 해 두죠. 그런데 이 3만 원으로는 편의점에서 작은 간식을 15번쯤 사 먹을 수 있으며, 서점에서 고전 두세 권을 살 수도 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해 봤을 때 다른 대안들이 더 가치 있다면 저는 테디베어는 사진이나 찍어 두고 가게에서 나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인형이 피로한 순간에 저를 위로해 줄 것을 생각하여 이쪽이 더 가치 있다고 본다면 살 수도 있겠죠. 물론 매번 이런 식으로 의사결정을 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중대한 지출을 결정해야 한다면 이 방식을 적용해 볼 만도 할 것 같네요.
기회비용 외에도 이 책이 지적해 주는 개념들 중에는 흥미로운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저자들이 지적하는 비합리적인 선택들 중에는 사람의 심리와 관련이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릴 사례들은 '공정함'과 '노력'에 대한 관념과 연결됩니다. 언젠가 폭설이 왔을 때 우버에서 요금을 높여 받았더니 사람들은 격분했다고 합니다. 요금에 화가 나서 그날 차를 안 타고 폭설을 뚫으며 걸어간 사람들도 있었을 겁니다. 또 다른 예로, 만약 열쇠 수리공이 5분 만에 손쉽게 문을 열어 주고 100달러 가까이를 청구한다면 왠지 바가지를 쓴 기분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열쇠 수리공이 1시간 동안 쩔쩔매다가 겨우 문을 열어 줬다면 같은 액수를 덜 아까워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들을 제시하며 저자들은 공정함의 관념 같은 것에 영향을 받지 말고 해당 재화나 서비스의 가치만을 객관적으로 고려하라고 말합니다. 통상적인 가격도 고려사항이 아니고 (겉보기의) 노력의 양도 고려사항이 아닙니다. 이 재화나 서비스가 그 값을 낼 만큼 충분히 가치 있는지만 보는 것이죠.
폭설이 오는 날에는 평소보다 우버나 택시의 가치가 큽니다. 그러니 어느 정도 값이 올라도 낼 만합니다. 눈 맞을 필요 없이 기분 좋게 일터로 가는 것이죠. 그리고 5분 걸린 열쇠 수리공이 한 시간 걸리는 수리공보다 쉽고 빠르게 문을 열어줬다는 것은 아마 그의 실력이 그만큼 좋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노력을 고려한다 해도 겉보기의 노력만이 아니라 베테랑 열쇠공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의 노력을 알아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또 애초에 열쇠공을 불렀을 만큼 급한 상황이라면 돈이 좀 나가더라도 문을 여는 것이 가치 있으며, 빨리 열어 주면 더 좋은 일일 것입니다. 저자들과 같은 사고방식을 우리가 평소에 적용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경제적이지 않은 심리를 지적하는 글을 읽으면서 이 부분에 대해 한번쯤 의식을 해 놓는 것은 좋은 일일 것 같네요.
공정함 개념과 비슷하게 흥미롭고 또 이미 제법 잘 알려진 이야기로 할인에 들어간 상술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역시 저자들은 붉고 커다란 글씨로 쓰인 할인 비율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그 물건 자체의 가치를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 여유로운 마음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돈과 관련하여 늘상 마음이 급한 경우에 비합리적인 선택을 더 많이 하는 듯합니다. 마음이 여유롭다면 할인도 덜 눈에 띌 것이고 기타 등등 불안을 자극하는 전략들에 덜 휘둘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늘 마음처럼 될 것 같진 않은 것이, 우리 내부의 비합리적인 심리도 문제지만 우리 외부의 유혹적인 환경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현대인들은 어떻게든 소비자의 돈을 우려내려는 갖가지 전략과 술책에 둘러싸인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신용카드와 페이 앱들은 보다 고민 없는 지출을 하도록 부추기는 효과가 있지요.
게다가 지출 관리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전반적인 자산관리 자체가 점점 복잡한 일이 되고 있습니다. 각종 옵션이 붙은 복잡한 금융 상품들을 보면 투자를 안 하는 것이 어설프게 투자에 뛰어들다가 사기를 당하는 것보다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개인이 어설프게 주식 같은 것에 투신해서 이득을 볼 가능성이 별로 안 된다는 것은 각종 경제 분야 책들의 조언과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고수하고 있는 생각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주식의 수익률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저축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듭니다. 일상에서 소소하게 실천할 수 있는 tip들이 모여 있는 느낌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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