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29 20:41

16

 

유라의 예언대로였다.

 

테란 연합은 오래가지 못했다.

 

오래전부터 그 무능함을 여실히 드러내던 연합 정부는 곧 무너졌다.

 

 

우리는 여전히 국가에 충성하는 모범 연구자들이었다.

 

어쨌거나 연합에 의해 우리는 최고의 대우를 받았고, 자기 한 몸이나마 재난을 피해 살아남았고, 서로 만났다.

 

없어졌거나 적어도 난민이 되어 떠돌고 친구 같은 건 당연히 기대도 못 하는 

그런 삶이었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러니 겉으로 연합을 위하는 것은 물론이고 속으로도 우리를 알아본 것만큼은 

좋게 여기는 마음이 남아 있었다.

 

만약 우리가 진실을 알자마자 분개하며 혁명이라도 일으킨다면 

이제부터 흥미진진한 고전 소설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의 애국심은 한결 반감되었다.

 

 

이제 테란 연합이 멸망하는 과정을 봐야겠다.

 

2500.

 

코랄의 후예는 연합의 어느 비밀 기지에서 사이오닉 방출기 설계도를 탈취했다.

 

그리고 사이오닉 방출기는 타소니스에 대량 투입되었다.

 

타소니스에 쏟아져 들어온 저그는 순식간에 행성을 초토화시켰다.

 

그렇게 테란 연합은 무너졌다.

 

곧이어 아크튜러스 멩스크는 테란 자치령의 건국과 자신의 황제 즉위를 선포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사이오닉 방출기의 연구에 우리도 관여했다는 것이다.

 

 

지배자의 역사 정리는 이쯤 해 두고, 우리의 역사에 대해 적어야겠다.

 

우리는 그 난리 동안 대체 어떻게 됐을까?

 

민간인이란 민간인은 다 죽어 나가고 있을 때, 우리는 어찌어찌 살았다.

그래서 나는 멀쩡히 살아 있는 채 이런 회상을 하고 있다.

그럼 구체적인 우리의 생존 방법은?

 

그야 간단하다. 마을에는 지하 대피소가 있다!

 

앞쪽에서 대피소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기본적인 것들을 말해 두기를 잘한 것 같다

그렇지 않고 지금 등장시켰다면 할 말이 너무 많았을 것이다.

 

 

저그가 파도처럼 밀려들어오기 시작한 그 날

우리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수도 타소니스 시티의 타소니스 대학에서 활기찬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실시간 검색어가 이상해지는 것이었다.

 

외계인’, ‘괴물’, ‘제노모프’, ‘저그’, …….

 

네티즌들의 여론은 온통 외계 생명체 출몰 소식으로 들끓고 있었다.

 

저그!

 

타소니스 상공에 저그가!

 

계속해서 올라오는 사진들은 저그의 출몰을 생생히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러나 사진이나 찍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빠른 판단이 필요했다.

 

지하 대피소를 써야 할 날이 왔다. 우리는 신속히 연락했고 이 작품으로 서둘러 대피하기로 했다.

 

다른 대피소는 믿을 수 없었다. 그나마 괜찮은 대피 시설들은 군 우선이었다

민간인이 접근할 만한 곳들 중 저그의 집중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곳을 찾는 것보다 마을로 가는 게 빨랐다.

 

돌이켜보니 목적지가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가야 할 길을 알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러나 마을은 수도와 떨어져 있었고, 서둘러야 했다.

저그는 이미 지상으로 내려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가까스로 모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저그가 모여들기 시작했을 때 바로 피한 것이 다행이었다.

 

어쨌든 가장 먼저 공략당하는 곳은 인구 밀집 지역이었고

그쪽이 무너지는 동안 외곽으로 피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모두들 각자의 집 지하의 대피 공간으로 들어갔다. 이제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우리 집에는 유라가 가장 먼저 도착해 있었고 나머지 셋은 거의 동시에 들어왔다.

 

유라는 벽에 기대 앉아 있었다. 그리고 에이든은 들어오자마자 크게 한숨을 쉬며 드러누웠다

나와 데이비드는 유라처럼 벽에 등을 대고 앉았다.

 

몇 분간 정적이 감돌았던 것 같다. 모두 아무런 말도 행동도 없었다.

놀라움을 가라앉히고 완전한 냉정을 찾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에이든이 일어나 앉더니 말했다.

 

사진들 올라오는 거 봤어? 저그 맞지?”

 

확실히. 그게 저그가 아니면 뭐겠어.” 내 대답이었다.

 

이번에는 유라가 이렇게 말했다.

 

아무런 전조도 없었는데 왜 갑자기 떼로 출몰한 거지.”

 

나는 말했다. “그러게, 꼭 누가 의도한 것처럼.”

 

이 대화를 할 때쯤 이미 우리는 어떻게 된 일인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 다시 연락 시작된다.” 데이비드의 알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친구들이 대화에 참여했고, 외부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통신 기술의 위대함이 새삼 느껴졌다. 모두 한 공간에 있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더 효율적이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인터넷에는 계속해서 생생한 영상이며 글들이 올라왔다.

 

한 친구가 말했다.

 

여러분 지금 이렇게 인증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그러자 이런 대화가 이어졌다.

 

그러게. 이 사람들이 어떻게 될지 알고 있다는 것이 참…….”

 

하지만 고마운 사람들이야. 정보를 제공하고 가는 셈이잖아.”

 

맞는 말이야. 우리도 덕분에 빨리 알고 탈출했지. 조금만 더 거기 있었으면 우리도 똑같은 처지가 됐을걸.”

 

그러다가 유라의 이 말로 대화의 흐름이 전환되었다.

 

그나저나, 이제 이 사태의 이유를 파악해 보자고.”

 

좋은 생각이야. 일단 눈에 보이는 상황은 웬만큼 파악됐으니.”

 

내 생각에 이건 누군가 의도한 상황인데.”

 

저그 스스로의 판단이 아니라 외부의 조작이 있었다는 건가?”

 

그렇지. 내 생각에는 우리 테란의 누군가가.”

 

그러던 중 갑자기 한 친구가 이 한 단어를 말했다. “사이오닉 방출기.”

방출기 연구를 진전시켰던 바로 그 친구였다.

 

모두 그 친구의 말을 경청했다.

 

이건 방출기로 불러 모은 거야. 확실해. 개발할 때 내가 본 게 있는데

움직임을 봐도 그렇고 정황상으로도 사이오닉 방출기가 아니면 이렇게 될 수가 없어.”

 

사이오닉 방출기는 연합 무기잖아. 어쩌다가 타소니스에 설치된 거야? 자폭을 할 리는 없고.”

 

그야 당연히 누가 훔쳤겠지.”

 

도대체 누가?”

 

그럴 만한 사람은 아크튜러스 멩스크뿐이야. 연합 수도가 무너져서 유리해지는 쪽은 코랄의 후예니까

또 탈취할 능력을 가진 세력도 그쪽뿐이고.”

 

그렇게 우리는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는 일의 특성상 고급 정보에 접근할 기회가 많아지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대부분의 민간인들은 자기가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어 갔다는 것인가…….

 

나는 유라에게 말했다.

 

네 말대로 됐네. 되돌아왔어. 지금 보니 엄청난 예언이네.”

 

그래도 이런 충격적인 방식일 줄이야. 저그를 풀다니.”

 

전체 대화도 계속됐다.

 

내가 실물 자산을 강조한 이유를 알겠지? 이 사태를 봐.

 

돈이란 게 완전 휴지 조각이 돼 버렸잖아. 아니, 휴지도 아니다. 그냥 숫자 몇 개지

돈만 갖고 있던 사람들은 망한 거야.”

 

자산관리라면 일가견이 있는 어느 친구의 말이었다.

 

돈이 문제냐, 사는 게 문제지.”

 

또 다른 친구의 일침이었다.

 

그건 그래.” 빠른 인정이었다.

 

그래도 네 말 듣고 골드바 사 두긴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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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6 15:47

15

 

끝없는 여행이 아니었다. 시작과 마지막 시간이 정해진 여행이었다.

우리는 언젠가 여행을 마치고 타소니스로 돌아와야 했다.

 

큰 미련이나 아쉬움은 없었다. 우모자는 분명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우리의 마을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이 여행은 충분히 길었다.

 

새 친구와 물리적으로 멀어지는 것은 조금 신경 쓰였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언제든지 사용 가능한 다채롭고도 생동감 넘치는 연락 수단들이 존재했다!

 

우리는 모두 별 탈 없이 돌아왔다.

 

 

나는 코랄에 대한 충격적 진실을 나머지 친구들도 알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코랄에서 온 친구들이 여러 명 더 있었기 때문이고

고향이 어디인지와는 상관없이 이 이야기는 모두에게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내게 사실을 알려 준 잭에게도 동의를 구해 둔 채였다.

고맙게도 잭은 나에게 보여 줬던 영상을 전송해 주었다.

 

웬만큼 마음이 정리되고 여행의 여운이 사라져갈 즈음

나는 아주 중요한 일이라며 모두를 불러 모은 후 그 이야기를 했다.

 

영상이 워낙 잘 편집되어 있었기에 그 이상의 어떤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자료의 출처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우모자 보호령의 한 정의로운 과학자라고만 해 두었다.

 

직후의 반응은 외관상으로는 별로 다채롭지 않았다.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당장 혁명이라도 일으키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기에 관한 대화는 많았다.

 

이 사실을 전한 나에게는 온갖 질문이 들어왔고 여러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중에는 어느 날 저녁 집에서 넷이 예쁜 식탁에 둘러앉아 커피에 비스킷을 찍어 먹으며 했던 대화도 있다.

 

많은 경우에 그랬듯 유라가 시작했다.

 

이거 이렇게 가면 금방 망할 텐데.”

 

나는 처음에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마찬가지였던 데이비드가 물었다.

 

뭐가? 연합?”

 

. 이런 식으로면 연합 오래 못 갈 걸.”

 

유라가 뭔가 설명하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모두들 집중해 주었다.

 

어떤 국가나 세력이 일어나고 멸망하는 과정은 거의 늘 똑같아.

무슨 역사책을 봐도 나라가 망해 가는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지.

 

지금 테란 연합이 딱 그런 전철을 밟고 있어.

 

썩을 대로 썩은 정치, 무지막지한 빈부 격차, 곳곳에서 일어나는 혁명.

 

수십 번, 수백 번을 반복해도 또 이렇게 되는 건가.”

 

더 재미있는 부분은 다음이다.

 

그대로 돌려받을 거야.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는 그 오래된 교훈처럼.

 

그렇게 한 행성을 잿더미로 만들었으니, 머지않아 똑같은 꼴을 당할 거다…….”

 

그러자 에이든은 똑같이 돌려받는다? 듣고 보니 그럴듯한데

왠지 네가 방금 큰 예언을 한 것 같아.”라고 말했다.

 

그 말대로 유라는 그날 절묘한 예언을 한 것이었다.

 

행성의 니키타가 알면 재미있어할 것 같다…….

 

 

코랄 IV의 진실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 행성에 퍼부어진 끔찍한 공격의 폭로는 계속해서 밝혀진 연합의 또 다른 만행들에 앞선 전주곡일 뿐이었다.

 

이 강렬한 시작을 계기로 우리는 고향과 가족의 생존 여부에 대해 치밀하고도 매우 신중하게 캐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우리는 연합의 온갖 양민 학살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선발된 60명의 또 한 가지 공통점이 밝혀졌다.

 

연고자가 없다

 

, ‘없어졌다가 맞는 건가.

 

타소니스로의 이주와 코랄의 참사는 약 2년 간격을 두고 있다.

 

다른 친구들의 고향 행성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마을에 온 후 2~3년 정도 후에 무슨 일이 터졌다.

 

농업으로 살아가는 어느 빈곤한 변두리 행성에서는 흉작으로 세금을 내지 못해 

모든 물자가 끊긴 채로 주민들이 집단 아사했다.

 

사라계의 한 행성에서는 연구소 근처의 어느 거주지가 알 수 없는 외계 종족의 공격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우리는 이런 비극에 대해 너무도 무지했다. 몇 줄의 건조한 글자들로나 알았을 뿐이었다.

 

적어도 2489년 이후에는 한가롭게 놀고먹으며 걱정 없이 공부나 조금 하면서 살아왔다.

 

더욱 무서운 것은 아직도 제대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조사한 진상을 모두 정리하고 그 결과 우리의 예상치 못한 공통점을 발견한 후

매우 활발한 대화가 이루어졌다.

 

이번에는 어느 날 아침에 집에서 네 명이 푹신한 소파에 나란히 앉아 

녹차와 다식을 먹으며 했던 대화를 불러내겠다.

 

에이든의 의문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저 위에 계신 분들이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이런 거지?”

 

그래서 나는 말했다.

 

무슨 면을 말하는 거야?”

 

굳이 고향도 가족도 날아간 아이들만 이렇게 모아서 집중 육성한 이유를 모르겠다 이거지.”

 

유라가 곧바로 말했다.

 

너 또 알면서 묻지. 우리도 알고 있나 궁금하니까.”

 

그럼! 재미없게 혼자만 생각하면 뭐 해. 같이 얘기해야 재밌지. 잠깐만, 너도 종종 그러잖아.”

 

나도 인정하지. , 그럼 해석은 내가 해 볼까?”

 

그리고 시원하게 말했다.

 

무 연고자, 무 협박.”

 

에이든이 말했다. “명쾌한 한 줄이군. 좀 감이 잡히는데.”

 

이상적인 흐름을 위해 내가 한 마디 얹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해 줘.”

 

, 방금 그 말 그대로야. 더 볼 것도 없어.

 

이쪽 분야가 협박이 워낙 많잖아. 제 수명 다 못 살고 가는 사람들도 드물지 않지.”

 

들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왠지 유라는 그런 공갈 협박에 잘 대처할 것 같은데

잘은 몰라도 지금까지 본 성격대로라면.’

 

그러는 동안 유라의 이야기는 잘 흘러갔다.

 

전통적으로 최고의 협박이 가족을 잡아 놓는 거잖아. 사실상 제일 치사한 수이기도 하고.

 

차라리 자기 안전만 위협받으면 나 없으면 파일도 없거든!’하고 버텨 보기나 할 수 있는데

주변을 물면 문제가 달라지지.”

 

에이든은 감탄했다. “, 큰 그림 보소.”

 

데이비드가 그 말을 받아 말했다.

 

그러고 보니 큰 그림 또 있다. 우리가 일종의 납치를 당한 후 몇 년 후에 그 재앙들이 일어났잖아

어쩌면 이게 더 놀라운데?”

 

나도 마침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도 그 생각 하고 있었는데! 그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나기 전에

그것도 한 2~3년은 이전에 이것들은 다 알고 있었다는 거잖아.”

 

유라가 말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 딱딱 맞아떨어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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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5 19:24

14

 

미안, 제일 당황할 사람은 너일 텐데.”

 

나는 , 괜찮아.”하고 평범하게 대답했다.

 

잠시 후 잭은 뭔가 생각했는지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그래, 그걸 확인해야겠다. 너 언제까지 코랄에 있었어?”

 

기억해내는 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굳이 따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언제까지였더라. 89. 맞아, 2489년에 타소니스에 왔어.

 

정확한 날짜는 좀 더 생각해야 기억날 것 같고, 이 정도면 되나?”

 

잭은 연도를 듣고는 기뻐하며 말했다.

 

, 역시 그런 거였어! 이것도 생각 안 하다니, 나도 참.”

 

그러나 나는 의문이 가득했다. 내가 모르고 있던 그것은 무엇일까.

 

그런대로 짐작은 해 왔다. 하지만 나는 그 실체를 몰랐었다.

 

나는 잭에게 말했다.

 

그럼 이제 내 고향 행성이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줘.”

 

잭은 그러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말없이 하나의 영상을 보여 주었다.

 

 

2491.

 

1000개 이상의 핵미사일이 행성 전역에 발사되었다.

 

연합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저항 활동에 대한 간단한 대답이었다.

 

정작 반란군 수장 아크튜러스 멩스크는 사전에 탈출했다.

 

결국 이것은 단지 3500만이라는 민간인 대량 학살이었다.

 

녹색 행성은 순식간에 검은 황무지로 바뀌었다.

 

완벽한 폐허이자, 죽음 그 자체.

 

 

이것이었다. 짐작이었던 것이 이제는 현실이 되었다.

 

잭은 묵념이라도 하는 듯 조용했다.

 

괴로운 감정이 찾아올 것을 각오했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꼭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아름다웠다. 멀리서 봤기 때문일까.

 

나는 운이 좋았다. 그 날의 납치가 아니었다면?

 

 

영 좋지 않은 일인데.”

 

나는 아주 덤덤하게 말했다.

 

상투적인 위로는 싫어하는 것 같아서, 그냥 가만히 있었어…….”

 

잭의 말이었다. 전적으로 옳았다.

 

고마워. 그 날 코랄에 없었던 것만큼이나 운 좋은 일인 것 같아, 이런 친구를 만난다는 건.”

 

내 생각을 그대로 말했다.

 

그런데 나는 잠시 후 괴로워졌다.

 

그럼 내 가족들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가 나의 새 친구는 말했다.

 

괜찮다면 이 일에 대해 너에게 말해 줄 게 있어.”

 

나는 계속하라고 했다.

 

우모자와 코랄은 제법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

 

단도직입적으로, 우리는 코랄의 후예를 지원해.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 거냐고? 원래는 안 되지.

네가 코랄 출신이니까 들어도 될 것 같아서.

 

, 코랄의 후예라는 이름은 처음 들었겠네.

 

네가 알고 있던 반란군이랑 물론 같아.

코랄의 반란이 그 전신이고, 7년 전 그 사건 후 코랄의 후예로 수립됐지.

 

어쨌든 이 동맹 덕에 보호령과 연합은 좀 껄끄러운 관계야.

 

그럼에도 우리가 이들을 돕는 데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어.

가장 그럴듯한 명분은 인도주의를 위해서라는 것.

 

다른 이유들도 있지만, 그것까진 나중으로 미루도록 하고…….

 

본론은 이거야. 보호령은 코랄의 난민들을 받아들였어.

 

그리고 나는 지금 당장 신원 조회를 할 수 있어.

 

혹시 네 가족이 우모자에 있다면 바로 찾아낼 수 있을 거야.”

 

어차피 그 때 그곳에 있었다면 희망 같은 건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굉장히 고마운 일이었다.

 

시간 있으면 그렇게 해 줘. 너한테 도움 많이 받네.”

 

.”

 

못 찾았다. 기대는 못 했지만 우울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어쩌면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다라는 친구의 위로에도…….

 

 

무거운 이야기를 좀 했다.

 

하지만 우모자 여행은 코랄이 핵폭탄 맞고 폐허가 된 것을 이제야 알게 됨이런 씁쓸한 부분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러니 좀 더 밝은 이야기로 돌아오겠다.

 

 

일반적인 관광 같은 것은 나보다 훨씬 더 잘 기록한 사람들이 많을 테니

나는 프로토스 연구자이자 내 친구인 스미스 박사 이야기나 좀 더 해야겠다.

 

우리는 몇 번 더 만났다. 연구소에서 본 적도 있고 다른 곳을 선택한 적도 있다.

 

여행지에 현지인 친구가 생긴다는 것은 여러모로 좋은 일이다.

 

덕분에 숨겨진 동네 식당 등을 많이 소개받았다.

그러면 나는 또 내 마을 친구들에게 슬쩍 소개하는 거다!

 

그러자 친구들은 존경의 눈으로 바라봤다. 언젠가 유라는 이렇게도 말했다.

 

너 이런 골목은 어떻게 알았어? 설마, 우모자에서 보낸 첩자는 아니겠지?”

 

나의 반응은 이렇다.

 

이런, 너 같으면 스파이로 나를 보내겠어? 기본적인 전투 능력도 없는데.”

 

그러면 유라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근데 넌 이게 좋잖아.”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톡톡 두드린다.

 

그거야 우리 다 마찬가지지 뭐.”

 

 

어느 날 잭이 맡고 있는 그 연구실에서 우리는 독특한 일을 좀 했다.

 

우리끼리 사용하는 암호를 만든 것이다!

 

내 키의 반쯤 되는 어린애들이나 할 것 같은 일이지만…….

그만할 때 못 했으니까 이제 와서 하는 것이다.

 

엄청나게 복잡한 암호를 만들지는 않았다.

 

물론 어려운 암호도 만들 줄 알지만 이건 지금 키의 절반이었던 그때에 맞춰서 좀 더 온건하게 만들었다

암호라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잭은 220, 나는 284.

 

이 두 수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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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깜찍이^^
2017.03.12 17:28

13

 

나는 우모자의 한 유명 대학을 방문했다.

민간에 개방된 곳이어서 그다지 제약 없이 둘러볼 수 있었다.

 

역시 대학 연구소를 주로 구경했다.

여기에는 잘 알려진 프로토스 연구소가 있었다.

 

일단 외계 종족을 이렇게 전문적으로 연구한다는 사실에 감명을 받았다.

 

연합에서 온 나로서는 몹시 이질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이쪽은 외계 종족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었다.

 

저그는 아예 벌레로 취급했고, 프로토스는 굳이 적으로 만들지는 않더라도 우호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살던 나라가 그런 곳이었으니 나 역시 외계 종족에 대해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도 프로토스 연구소 견학은 중대한 일이었다.

사고의 폭이 조금 더 넓어지는 계기였다고나 할까.

 

우모자 보호령과 프로토스의 관계에 대해 말하자면 이렇다.

 

프로토스가 코프룰루 구역에서 처음 그 모습을 드러냈을 적에 보호령은 전쟁 방지 조약을 맺고 이들에게 협력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교류를 하긴 하지만 프로토스 쪽에서 그럴 마음이 들었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

 

어쨌든 이 온화한 세력은 프로토스와 그런대로 왕래가 있었나 보다.

이렇게 제법 규모 있는 연구 시설까지 갖춘 것을 보면 말이다.

 

이 연구소에서 또 한 가지 눈여겨본 것은 이곳의 개방적인 분위기였다.

 

일단 연구실의 문이 대부분 열려 있었고, 벽에는 커다란 유리가 있었다!

 

그런 구조였으니 연구실 안을 들여다보는 것은 쉬웠다.

본다고 나무라는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내가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 것을 보면 들어오라고 하고 이것저것 보여 주고 소개해 주는 사람도 몇 있었다.

 

만약 내가 잘 아는 주제일 경우 나는 슬쩍 표시를 낸다.

그러면 연구자는 굉장히 반가워하며 좀 더 전문적인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즐거운 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좋은 시간이 몇 번 있었다.

 

그 중 매우 중대한 한 가지를 소개한다.

 

 

연구소의 흥미로운 복도를 돌아다니던 나는 유난히 아름다운 한 연구실을 보게 되었다.

 

그 연구실에는 갖가지 모양과 갖가지 색상의 오묘한 광물들이 가득했다.

그것들은 프로토스 수정이었다.

 

나는 열린 문 앞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 잠시 고민했다.

 

아무도 없네. 허락도 없이 들어가도 될까?’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문이 열려 있잖아. 이건 들어오라는 계시야!’

 

이렇게 멋대로 결론 내리고 활짝 열린 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에 들어와 보니 더욱 환상적이었다.

 

여기저기 붙어 있는 메모지들, 사이오닉 검을 든 전사들의 현란한 전투를 구현한 홀로그램, 재미있는 조그마한 로봇들까지, 온갖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뒤에서 쿵 하는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다.

 

뭔가 잘못하기라도 한 것처럼 깜짝 놀라 약간 손을 떨고는 곧 뒤돌아보았다.

 

어떤 남자가 서 있었다.

 

굉장히 선량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수정이 참 예뻐서 들어왔습니다. 잠시 구경만 했어요.”

 

그리고 나는 허락도 없이 들어와 미안합니다.”라는 상투적인 인사를 한 뒤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그는 명랑하게 말했다.

 

벌써 가려고요? 좀 더 구경해요.”

 

그는 이 무단 침입을 조금도 불쾌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눈에 보이게 좋아하며 다시 들어왔다. 그는 말했다.

 

이 근사한 친구들을 알아본다니 기쁘네요.”

 

우리는 이 방의 볼거리들에 대해 대화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대단히 말이 잘 통하는 친구를 만났다는 것을!

 

이런저런 대화를 하던 중 나는 그의 이름을 물어봤다.

 

그나저나 이름이 뭐죠?”

 

여기가 타소니스 대학이었다면 개인 정보는 좀 더 늦게 물어봤을 수도 있지만, 나는 언제 우모자에 다시 올지 모르는 사람이었으니 이 새 친구를 그냥 아무개로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잭 스미스입니다.”

 

나는 내 이름을 밝혔다.

 

나는 그레이스 쿠퍼에요.”

 

그 뒤 우리는 한동안 개인정보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나이가 같다는 사실도 알았다. 또 연락처도 주고받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말했다.

 

그러고 보니 벌써 네 연구를 하고 있는 거야?”

 

그러자 잭은 말했다.

 

, 그런 건 아니야. 이 연구실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교수님 거야.

 

그런데 그분이 좀 오래 휴가를 가셔서 연구실을 몇 달 비우게 됐거든.

나한테 연구실을 부탁하셔서 여기 있는 중이야.”

 

나는 생각했다.

 

연구실을 맡길 정도면 굉장히 신뢰하는 제자인가 보네.’

 

그나저나 너는 그냥 민간인이야?”

 

이 대학 사람인지를 묻는 것으로 생각하고 대답했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말을 들어 보면 과학자인 것 같은데.”

 

과학 공부를 하고 있는 건 맞아.”

 

역시. 어느 대학에서 왔어?”

 

내가 우모자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말했다.

 

저기, 나는 우모자 보호령 사람이 아니야.”

 

? 그럼 혹시 연합?”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어느 행성에서 온 거야?”

 

타소니스.”

 

.”

 

나는 어떻게 우모자에 오게 됐는지 말했다.

연합에서 보낸 스파이로 오해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야기를 듣고 잭은 말했다.

 

그랬던 거군. 그쪽에서 오는 손님이 잘 없어서 좀 의아했어.”

 

출신 지역 이야기가 나오니 나는 갑자기 코랄이 생각나서 말했다.

 

지금은 타소니스에 살고 있지만, 예전에는 코랄에 살았었어.”

 

잭은 당황하며 말했다.

 

잠깐만, 코랄이라고?”

 

, 코랄 IV.”

 

? 그게 가능한 일인가?”

 

나는 말했다.

 

이봐 친구, 왜 그래.”

 

나는 이런 반응의 이유를 모르면서 또 한편으로는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절대로 코랄을 찾아갈 수 없었던 이유를. 그 무서운 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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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1 12:03

12

 

나의 세 친구 이야기에 많은 페이지를 바쳤다.

 

재미있는 이야기였기를 바란다.

 

이런, 이렇게 말하니 꼭 이야기가 끝난 것 같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기껏해야 내가 열다섯이 됐을까 말까 하던 때이다

그러니까 대충 생각해도 10년이 넘게 남은 것이다.

 

여기 적는 몇 가지 외에도 재미있고 일상적인 사건들은 엄청나게 많다.

가볍고 통통 튀고 유쾌한 일화들 말이다.

그렇지만 그걸 다 풀어내자면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는 조금은 중대한 사건으로 넘어가겠다.

 

어쩌면 무거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2498년이었다.

 

나는 여전히 마을에 살았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마을에는 처음 온 그 날 후로 새로 오거나 나가는 아이는 없었다.

 

선생님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몇 번 바뀌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마을에 상주하는 교사는 필요가 없어졌고 실제로도 없어졌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계속 이 마을의 주인이었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다. 내 기억대로라면 이때쯤 60명 모두가 성년이었을 것이다. 나는 22.

 

우리는 학력도 만들었다. 그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또 재미도 있었다.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했을 뿐인데 덤으로 그럴듯한 증서까지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의 학생들과는 조금 다른 과정을 거쳤다.

 

어딘가에 출석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거의 온라인 강의를 이용했다.

 

썩 훌륭한 복지 국가라고 할 수 없는 나라의 그저 그런 공립학교보다는,

그런 국가임에도 웬일인지 특별히 많은 투자를 한 이 특별한 마을의 시설이 훨씬 나았다.

 

굳이 보통의 학교생활을 감내하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의 마을은 충분히 훌륭했다.

 

대학 과정부터는 약간 변화가 생기긴 했다.

 

우리는 모두 타소니스 대학에 들어갔다

그곳은 테란 연합의 대학 중에서 가장 평판이 좋고 명망 있는 교육 기관이었다.

 

대학에 들어간 후로는 통학하며 출석했다. 다행히 대학이라는 곳은 그 이전의 학교들과는 많이 달랐다

이곳 타소니스 대학의 사람들은거의 다 동족이었다.

 

게다가 대학은 연구 시설이 너무나 훌륭했다!

인공 블랙홀을 비롯해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런 말을 하니 에이든의 노래 한 곡이 생각난다. 제목이 수학은 아름다워였다

희망적으로 시작했다가 우울해졌다가 다시 즐겁게 끝나는 노래였다.

 

그렇게 우리는 학위를 쌓아 갔고 박사라는 호칭을 듣고 다니는 사람이 점점 늘어났다.

 

 

좋은 시절이었지만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었다.

 

우리가 타소니스 이전에 살던 곳은 꽤 다양했다.

 

그런데 어디에서 왔던 간에 아주 이상하게도 우리는 다시는 가족을 만나지도 

예전에 살던 곳을 찾아가지도 못했다.

 

당연히 우리는 이상하게 여겼다. 하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뭐라도 시도해 볼 수 있었긴 하다. 우리에게는 그런대로 자유가 있었고, 정보를 찾아 볼 수 있었다

원한다면 직접 찾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시도해봤다.

 

하지만 우리는…….

유라의 말이 가장 깔끔하니 옮긴다.

 

알려고 하면 안 될 것 같단 말이지.”

 

 

우리는 여행도 많이 다녔다.

여행, 관광, 휴양, 유학, 연수, 견학 등 다양한 용어가 들어맞는다.

 

2498년에는 우모자 보호령을 여행했다. 몇 달 간의 제법 긴 기간 동안이었다.

 

그전까지의 여행 경비는 대개 세금에서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 특별한 여행은 사비로 갔다.

 

비용 마련은 아주 쉬웠다.

 

우리는 넉넉한 수입이 있고 원래는 그것만 가지고도 잘만 살 수 있다.

그런데 우린 그 돈도 별로 쓸 일이 없어서 일관적으로 저축을 해 왔다.

 

단순히 통화를 저금하기도 했고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실물 자산을 사들이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썼지만 하여튼 쌓아 뒀다는 점은 똑같았다.

 

그러니 어마어마한 재산이 축적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안 그럴 수 있는데 굳이 왜 각자의 재산을 떼어 내서 갔는지 궁금하다면,

그건 여행지가 우모자이기 때문이었다.

 

특정 귀족 가문들 중심으로 돌아가는 어디와는 다르게,

 

공정하고 민주적인 정부인 우모자 통치 의회를 최고 기구로 둔 우모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코프룰루 구역 테란으로서는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이다.

 

공업화로 자연환경을 완전히 말아먹은 어디와는 다르게,

 

낭비를 지양하는 의회의 철학으로 우모자의 자연은 잘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보호령과 연합이 애매한 관계일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는데, 이것은 좀 나중에 얘기할 것이다.

여행 이전에는 모르고 있었던 사실들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우리가 우모자에 나라의 돈을 떼어서 연수를 가겠다고 하면 허가가 안 날 수도 있고

가더라도 제약이 있는 여행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최고로 자유로운 여정을 위해 스스로 비용을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기대한 대로 여행은 자유로웠다.

 

타소니스에서 우모자로 떠날 때, 그리고 우모자에서 타소니스로 돌아올 때.

이 두 번의 이동은 다 같이 움직였다. 근사한 우주선을 빌려서 말이다!

 

그 이동을 제외한 다른 여정은 개인적으로 알아서 했다.

우모자는 치안이 좋았기 때문에 혼자 돌아다닌다고 안전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같이 다니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었겠지만

특히 이런 때에는 너무 함께 있으면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홀로 계획해 홀로 여행하는 것을 기본으로 했다.

 

하지만 종종 연락하며 소식을 나누고 유용한 정보를 공유하거나 

때로는 직접 만나서 한두 군데쯤 함께 방문하기도 했다.

 

가끔씩 마주치면 더 반갑게 마련이니까.

 

 

우모자 보호령은 수도성 우모자와 몇 개의 위성 및 기타 거주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주로 우모자 본성을 여행했다.

 

우모자는 그 옛날 지구처럼 또 현재의 내가 사는 행성처럼 꿈같은 자연의 아름다운 행성이었다.

 

마을은 외곽 지역이어서 그런대로 환경이 깨끗했기에 엄청난 차이를 느끼지는 않았다

새로운 환경이라는 것은 실감이 났지만.

 

만약 대도시에서 살다가 이런 곳에 온다면, 예를 들어 수도인 타소니스 시 같은 곳이라면

정육면체까지만 알다가 초입방체를 접하는 기분일 것이다.

 

적갈색과 주황색의 깨끗한 하늘은 방문자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문득 희미한 향신료 냄새가 난다는 것을 깨닫자 더욱 즐거웠다.

 

이 천연 향신료는 여러 요리에 쓰이고 있었다.

 

평화로운 초원과 평원에서는 토착 생물들이 뛰어다니는 것을 볼 수도 있었다.

 

나는 알차게 여행을 즐겼다.

 

이런저런 맛좋은 요리들도 즐겼고,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서 휴식하며 평화를 누렸고

괜찮은 기념품이 있으면 사기도 하고, 뭔가 의미를 찾을 만한 장소들도 찾아다녔다.

 

우연히 파인애플 사탕을 발견하고 격렬히 기뻐하기도 했다!

 

대학교나 연구소도 여러 곳 탐방했다. 그런 방문은 재미도 있고 유익하다

그런 방문 덕분에 많은 것을 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한 곳에서…….

 

우모자 보호령 여행에서 가장 중대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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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5 07:00

11

 

에이든 폭스. 아래층 오른쪽 방의 친구.

 

행성 친구들 중 헤이든은 그 이름의 발음이 에이든과 비슷해 친근감이 들었다.

그전에는 어쩔 수 없이 저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헤이든을 비롯한 행성의 저그 친구들 덕에 많이 나아지고 있다.

 

다시 에이든으로 돌아와서, 이 친구의 머리 색은 검고 눈동자는 밤색이다.

그리고 활동적인 성격 덕분인지 피부는 좀 탄 편이다.

 

이런 색깔들에 집착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유전 정보로 사람을 검색하려 할 때 이것들이 쓸 만한 자료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그의 머리 모양은 재미있다.

매일 무작위로 달라지는 심히 자유로운 머리카락이다.

 

다른 친구들도 그다지 외모 치장에 관심을 갖는 편은 아니었기는 했다.

 

에이든은 수학을 좋아한다. 그는 적당히 어려운문제를 만났을 때 가장 즐거워했다.

우리는 수학 전문 해결사가 필요할 때 에이든을 찾곤 했다.

 

에이든은 음악도 좋아했다. 여러 면에서 재능 있는 친구였다.

그는 주로 기타 또는 기타와 비슷한 현악기 연주를 즐겼다.

 

그런 종류의 악기들은 들고 다닐 수도 있고 노래 부르며 즐길 수도 있어서 좋아한다고 한다.

실제로 마을에서는 에이든이 돌아다니면서 노래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 친구는 우쿨렐레와 자주 함께했는데, 작고 가벼워서 가장 편하다고 말하곤 했다.

게다가 마을에 오기 전부터 동고동락하던 친구이니 애정이 갈 만했다.

 

음악을 즐기는 소년 에이든에게 아주 잘 된 일이 있었다.

 

마을에는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설들이 있다.

그 중에는 우리의 교과 공부에 관한 도움을 주는 것들도 있지만,

우리의 취미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공간들도 많다!

 

특히 예술적인 취미를 즐기는 공간이 하나도 아니고 몇 개나 있다.

 

우리가 음악실이라 불렀던 곳이 있다. 그곳은 에이든의 낙원이다!

음악실에서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컴퓨터로 노래를 만들 수도 있다. 물론 음악을 들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익숙한 것부터 처음 보는 독특한 것까지, 많은 종류의 악기들이 있다!

 

에이든은 음악실 단골이다.

그는 작은 우쿨렐레와 자신의 목소리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음악가이지만

이런저런 장비들이 마련되자 더욱 더 우리를 놀라게 했다.

 

에이든은 아마추어 음악가정도의 호칭으로는 부족했다.

그는 그 어린 나이에 이미 전문가였다.

 

꽤 많은 친구들이 이 음악실을 좋아했고 자주 찾았다.

악기 하나쯤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배운다는 것은 물질로 살 수 없는 가치이니!

 

음악과 수학을 좋아하는 에이든은, 음악과 수학의 관계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했다.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었다. 언젠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음악이란 게 이론적으로는 이렇게나 수학적이지만,

실제로 노래할 때 숫자를 신경 쓰면서 하지는 않지, 헤헤.”

 

이론과 실전은 다르긴 좀 다르다.

그러나 여러분은 음악에서까지 생각지도 못한 수학을 만날 수 있다!

 

에이든은 유쾌하다. 약간 까불거린다고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때로는 유라에게 한소리 듣거나, 위험하지 않을 정도의 헤드록을 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 친구는 도를 넘는 심한 장난은 안 했다는 것은 분명히 하겠다.

 

그리고 에이든은 자신감이 있었다. 그는 이런 식의 너스레를 떨곤 했다.

 

하하, 깨우치지 못한 자들아! 너희를 위해 이 에이든 님께서 이 문제를 풀어 주지!”

 

우리는 이 즐거운 수학자이자 음악가를 좋아했다.

그는 우리를 가장 많이 웃게 해 준 친구였다.

 

에이든은 자유롭고 재미있는 친구이지만 늘 가볍기만 한 건 아니었다.

 

진지할 때는 아주 진지한 친구였다. 에이든의 엄청난 집중력과 열정은 존경할 만했다.

 

그럴 때의 에이든은 에너지를 모조리 불태워 버리는 것 같았다.

안광이라도 나오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가끔은 살아 있는 건가 싶어서 일부러 말을 걸기도 했다.

 

이렇듯 에이든은 공부와 휴식의 분리가 확실했다.

놀 때도 확실히 놀고 과제도 확실히 했다.

 

놀 땐 놀아야지! 그리고 할 땐 하고!” 에이든의 말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깊은 교훈을 갖고 있다!

 

과제나 공부할 것이 꾸준히 많은 상황에서 이 좌우명의 대단함을 볼 수 있다.

에이든은 할 때 집중해서 제대로 했다. 그리고 시간이 남아서 쉬거나 놀았다.

 

에이든의 자작곡 몇 곡의 가사가 기억이 난다.

자작곡 가사들은 자전적인 것이 많았다. 에이든 자신이 언젠가 그렇게 말했었다.

 

그 노랫말들을 통해 마을에 오기 전 에이든의 유년까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중 한 곡을 적겠다.

 

 

이봐 꼬마 친구 널 예전부터 지켜봤어 노래 좀 하는데 나랑 함께해 볼래

 

모두들 우리에게 열광할 거야

 

너는 노래를 하고 나는 기타를 치고 딱 좋은 조합이지

 

우리가 함께하면 대박이 날 거야

 

너만 좋다면 기타도 가르쳐 줄게 노래하며 기타 치면 근사하잖아

 

우린 거리의 스타가 될 거야

 

귀여운 꼬맹이니 우쿨렐레도 어울리겠어

 

모두들 너를 좋아할 거야

 

너는 재능 있는 친구야 너도 어설픈 녀석들에게 썩기는 싫지

 

나와 함께하면 제대로 자랄 거야

 

너는 진정한 음악가야 너는 나보다 훨씬 훌륭한 인재야

 

우린 훌륭한 2인조가 될 거야

 

 

에이든은 좋은 친구이다.

 

 

유라, 데이비드, 에이든.

 

별똥별 쏟아지는 지붕의 친구들을 한 명씩 자세히 불러내 보았다.

 

모두 좋은 친구들이었다.

 

나는 행복했다. 우리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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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31 22:40

10

 

데이비드 핸슨. 아래층 왼쪽 방의 친구.

 

잘생겼다.

 

누군가를 소개할 때 다짜고짜 잘생겼다고 하는 것이 흔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히 하고 싶었다. 그는 제법 잘생겼다!

 

그는 아름다운 소년이었다.

 

그의 눈동자와 머리카락 색은 갈색 계열이다.

그 아름다운 옅은 갈색은 데이비드를 더욱 섬세해 보이게 한다.

 

이 친구는 근시가 심해 어릴 때부터 안경을 써 왔다.

오목렌즈가 그의 감성적인 눈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조금 아쉽다.

 

처음에 지나치게 외적인 가치에 치중했으니 이제 좀 방향을 돌리자.

 

데이비드도 나처럼 물리학에 깊은 흥미가 있는 친구다.

 

그는 무한히 작은 세계를 탐구한다. 나는 무한히 큰 세계를 탐구한다.

 

정반대 영역 같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결국 작은 것이 큰 것이고, 큰 것이 작은 것이라고, 그 근본은 같다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관심 분야 덕에 우리는 교류할 것이 많았다.

 

데이비드는 온화하고 친절한 성격이다. 말수가 적고 그만큼 생각이 많다.

 

그래서인지 여자아이들과는 그런대로 잘 지냈다고 한다.

참을성 있게 잘 들어 주는 그 성격이 한몫한 것 같다.

 

하지만 앞에서도 밝혔듯이 남자 친구는 많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비슷한 기질의 조용한 친구들 몇몇과의 우정은 있었다는 것 같다.

 

그 역시 여기에서 잘 통하는 친구들을 만난 것을 기쁘게 생각했다.

 

어느 날 나는 이 친구의 책상 위에 있는 메모지들을 보았다.

그 중 이런 메모지가 눈에 띄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내가 그 구절을 음미하자 데이비드가 말했다.

 

희극이든, 비극이든, 무엇이라도 결국은 그렇지…….”

 

나는 데이비드에게 말했다.

 

멋진 말이네. 이것도 유라가 알려 준 거야?”

 

데이비드가 대답했다.

 

. 아마 타나크(Tanakh)’라는 엄청 오래된 책에 나오는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나는 말했다.

 

, 그건 옛날 지구인들이 믿던 종교 경전 아냐?”

 

데이비드가 말했다.

 

맞아. 우리 도서관에는 별의별 게 다 있는 것 같아!”

 

나도 우리의 사랑스러운 도서관에 감탄했다.

 

그러게. 그런 희귀 자료는 어떻게 구하는 건지. 굉장해.”

 

그러게. 참 신기하지.”

 

그 뒤 둘 다 얼마간 별 말이 없었다. 아무 말도 안 해도 괜찮은 친구였다.

 

나는 그 메모를 몇 번 곱씹다가 말했다.

 

이거 적어 가도 돼?”

 

데이비드는 물론이라고 했다.

 

나는 수첩을 꺼내 그 글귀를 적었다. 데이비드는 기분 좋게 웃었다.

 

데이비드는 섬세하고 손재주가 있다.

근처 집 친구들 중에는 조립식 장난감을 조립하다 막히거나 하는 일이 있을 때

데이비드를 찾아오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는 참을성이 있다. 느리고 꾸준하게 나아가는 그런 인내심이다.

 

작디작은 입자들의 행동을 그토록 묵묵히 관찰하는 것은 분명 감탄할 만한 의지를 요구하는 일이다.

 

언젠가 유라는 데이비드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슷한 맥락이 몇 번 있었던 것 같다.

 

, 그러니까 네가 눈이 나쁜 거야!

 

요거, 얼굴 하얀 것 봐. 가끔 광합성 좀 해!”

 

데이비드는 그냥 적당히 대답했다.

그러면 유라는 이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기 에이든 미쳐 날뛴다. 전구가 켜진 것 같은데. 놀아 줘야 하지 않겠어.”

 

그러면 데이비드는 에이든에게 다가가 낭만적인 즉흥곡을 듣거나,

어떤 때에는 에이든이 달려가는 뒤를 따라 힘겹게 언덕을 오르거나,

또 어느 날에는 어려운 과제에 관한 에이든의 모험담을 들었다.

 

여하튼 데이비드는 여러모로 그의 관심 분야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가 무한소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과제 이야기를 또 해야겠다.

 

과제 이야기를 위해 일단 이것을 말해야겠다.

 

나는 글에서 종종 유령이나 사이오닉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데,

이런 이야기는 아무나 아는 것이 아니다.

 

2500년 이전, 즉 연합이 다스리는 시기에는 유령의 존재는 특급 비밀이었다.

아마 웬만한 군 고위 간부들도 사이오닉 에너지가 뭔지도 몰랐을 것이다.

 

지배자가 선전의 명수 멩스크로 바뀐 후에는 방송에서도 보이는 등

유령이라는 이 강력한 요원의 존재 정도는 공개되고 있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정보는 여전히 기밀이지만.

 

그럼 나는 어떻게 옛날부터 잘만 알았던 걸까?

 

일단 내가 코랄 출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쪽에는 반란 세력이 좀 많아서 별의별 정보가 다 돌아다닌다.

그래서 모두 정확하지는 않지만 많은 정보를 주워들을 수 있었다.

 

그때야 그냥 자연스럽게 알고 있던 것이지만,

다양한 행성에서 온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해 보니 확실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타소니스로 온 뒤에는 더욱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연구자들은 뭔가 많이 알 기회가 있게 마련이다.

 

많이 안다는 건 좋기도, 나쁘기도 하다…….

 

이제 할 재미있는 과제 이야기가 바로 사이오닉에 관한 것이다.

 

사이오닉 방출기라 불리는 전술 병기가 있다.

 

유령의 파장을 응용해 만든 것인데 저그를 유인하거나 조종할 수 있는 도구이다.

실로 엄청난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가공할 무기의 발명에 우리가 기여했다.

 

유령에게 저그가 길들여지는 것을 보고 영감을 얻은 연구원들이 방출기를 막 연구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우리는 이 연구에 대한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때는 우리가 어떤 발언권을 가질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구경쯤으로 그칠 일이었다.

 

연구는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대단히 강력한 위력을 갖게 하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문제는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걸 요원들이 직접 가져가서 가동시키면 그들이 죽습니다. 글자 그대로 몸이 부서진다, 이겁니다.

 

하지만 무인으로 폭발시키면 제대로 작동되지를 않습니다. 유령만큼 훌륭한 촉매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아직 해결책을 찾지 못했지만, 곧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작동법만 찾으면 되는 일 아닙니까? 일단 방출기 자체는 개발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 중 한 친구가 뭔가 생각해낸 것 같았다. 그는 주변의 친구들에게 말하며 그의 이론을 확인받았다.

 

그리고 그 이론에 도움을 준 친구들 중에는 나도 있었다…….

 

확신을 얻은 그 친구는 자기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저기, 저희들 생각에는이 파장을 그대로 두기보다는 이렇게 바꾸는 게 어떨까 해서요.”

 

연구자들은 처음에는 저건 뭐지?’하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들 중 하나가 말했다.

 

일단 저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 봅시다. 어쩌면 답이 나올지도 모르죠.”

 

그러자 모두가 경청하기 시작했다. 뭔가 생각해낸 친구는 더욱 자신감을 얻었는지 유창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걸 이렇게 저렇게 바꾸면 유령이 없어도 폭발할 수 있는 상태가 될 것입니다.”

 

앞서 발표하던 연구자는 흥미롭다고 생각했는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엄청난 폭발력이 필요할 텐데, 그것에 대한 생각도 있는 건가?”

 

. 폭탄이라면 우리에겐 이미 충분합니다. 핵탄두를 이용하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자 연구자들은 술렁였다. 친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핵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드나요?”

 

한 연구자가 대답했다.

 

아니다. 그런 건 상관없었어.”

 

발표하던 연구자는 그새 머릿속으로 검증을 마쳤는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네 말이 맞아. 핵을 이용하면 돼. 이제 네가 사이오닉 방출기를 만든 거나 다름없는 거다.”

 

친구는 얼떨떨해하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이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 아닙니까?”

 

친절한 대답이 돌아왔다.

 

누구다 생각은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대부분 무시하고 스쳐 지나가게 마련이다.

자기가 했던 그 생각이 위대한 발견이라는 것도 모른 채로.

 

결국 그 아이디어로 뭔가를 해낸 사람은 너뿐이다.”

 

다른 연구자들도 한마디씩 했다.

 

천재적이야.”

 

전문가들도 못해낸 일을 영민한 아이 하나가 해결하다니.”

 

나중에 위대한 인물이 되겠어.”

 

사이오닉 방출기는 곧 완성되었다.

 

 

어쨌든 마지막은 데이비드에 대한 이야기로 마쳐야겠다.

 

데이비드의 말 중에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이 많았다.

쓸데없는 말은 잘 하지 않는 친구여서 한 마디 한 마디가 더욱 뜻 깊게 들렸다.

그가 뭔가 말하고 싶어 하면 다들 주목했다.

 

그가 내게 한 말 중 나에게 특히 각인된 것은 이것이었다.

 

너는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을 닮았어.”

 

나는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외모를 말하는 거야? 아니면 가치관 같은 내면?”

 

.”

 

그리고 그는 천진하게 웃더니 말했다.

 

좋은 사람이야.”

 

좋았다. 내가 그런 좋은 사람을 닮았다니 기뻤다.

 

데이비드는 좋은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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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1 17:11

9

 

별똥별 쏟아지는 지붕아래에 함께 사는 세 친구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 친구들과의 모든 추억을 풀어놓고 싶지만 그러면 지나치게 긴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러니 기억들을 고르고 골라서 여기서는 조금 간단하게 써야겠다.

 

어쩌면 훗날 나머지 기억들도 모두 기록으로 만들어 놓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럴 만한 시간도 충분히 있다. 지금의 이 행성에서는 말이다.

 

 

바쁜 연구원으로 지내다가 여유로워지니 처음에는 기분이 이상했다.

심지어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끼기도 했다.

 

쓸데없고 배부른 걱정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관점은 인정한다.

 

이와 관련해서 잭과 대화한 적이 있다.

 

나도 처음엔 그랬어.

 

바쁠 때는 간절하게 쉬고 싶었지. 어딘가로 떠나 버리고 싶었어.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됐지! 여기로 떠나 왔고, 얼마든지 쉴 수 있게 됐어.

 

그런데 그토록 바라던 여유를 찾으니까 불안하더라고. 할 게 없으니까 허전해졌어. 아이러니지.”

 

역시 잭 너도 마찬가지였구나.”

 

그렇지만 여기도 나름 일 있다?

 

방금 허전할 정도로 할 게 없다고 한 때는 처음엔 함선에서 같이 온 물자들로 그럭저럭 지낼 때였고,

나중엔 달라졌지.

 

아예 여기 정착할 마음을 먹고 한창 집도 짓고 그럴 때는 꽤 분주했어.

직접 농사짓고 가축도 기르려면 그것도 그다지 만만하지 않더라고.”

 

나는 이제 와서 이미 웬만큼 터전이 마련돼 있으니까 더 급격히 할 일이 없는 것 같네!”

 

그런가? 그래도 이제 네가 도울 일들이 많을 거야. 과학자가 필요할 만한 데가 많아서.

 

하여튼 너도 마음의 평화를 얻으면 좋겠다!

너도 이 행성에 살다 보면 진정한 내면의 평화를 찾게 되겠지.”

 

그러게. 그나저나 여기 동료들은 종족 불문하고 비슷한 점이 또 있는 것 같다.

다들 성실이 몸에 밴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맞아, 다 열심히 살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참 이상적인 모습이지.”

 

그런 건 학습하는 걸까, 타고나는 걸까……?”

 

좀 어려운 문젠데.

 

, 저기 파인애플 사탕 먹어 봐. 파티 때 쓰고 남은 거야.

네가 좋아한다니까 로즈 씨가 주더라고. 샬롯의 사탕은 예술이지! .”

 

 

잠시 현재의 이야기를 했다.

 

이제 별똥별 쏟아지는 지붕아래에 함께 사는 세 친구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

 

 

일단 옆방 친구인 이유라부터 소개한다.

 

유라의 검은 눈과 머리카락은 아름답다.

어두운 색의 눈동자는 꼭 그 안에 우주를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유라는 머리가 길면 거추장스럽다며 짧은 머리를 유지한다.

앞머리 역시 얼굴에 닿으면 짜증이 나기 때문에 시원하게 넘기는 것을 좋아한다.

 

좀 날카로운 인상이지만, 그런 날이 선 외관은 때로 묘하게 매력적일 수 있다.

유라가 이런 경우다.

 

유라가 주로 파고들어가는 분야는 화학이다. 유라가 실험을 할 때면 대개는 내가 조수가 된다.

 

이 친구는 암기력이 끝내준다. 그래서인지 언어적 능력도 굉장하다.

유라는 취미로 고문서 해독을 즐긴다.

 

오래된 문서라는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료실에 가면 오래된 자료들이 많았다.

종이책 역시 오래된 것이 많이 있었다.

 

그런 고어로 된 문서들은 읽어도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유라가 그것들을 요즘 말로 번역하는 것이다. 존경할 만한 능력이었다.

 

그래서 유라는 재미있는 옛이야기를 많이 알았다.

속담이나 명언 같은 것도 유라와 얘기하다 보면 많이 주워들을 수 있다. 그리고 역사에도 빠삭하다.

 

이 글에 있는 인상적인 글귀나 혹은 몇 세기쯤 이전의 시대와 관련 있을 것 같은 인용은

거의 유라에게 들은 것이다.

 

유라는 꼼꼼하고 예민하다. 유라의 방은 늘 질서정연하다.

물건의 위치가 바뀌면 안 되고, 모든 물건들은 나름의 좌표가 정해진 것처럼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다.

 

화학 실험을 즐기는 사람에게 그런 성격은 좋다. 약품 정리를 잘못해서 섞여 버리면 매우 곤란하니까!

 

언젠가 한 덜렁대는 친구가 달고나를 만든다면서 설탕도 아닌 소금에 불을 붙인 적이 있는데

안 좋은 의미로 장관이었다.

 

하루는 어떤 친구가 유라에게 지우개를 빌린 적이 있는데, 지우개를 뾰족한 모서리 쪽으로 사용했다!

 

그 친구는 다른 집의 친구였고, 유라의 지우개는 한쪽으로만 써야 했다는 것을 몰랐다.

   

유라는 , 괜찮아. 미리 안 알려 줬으니까 당연히 모르지.”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날 유라는 지우개를 좀 자주 만지작거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유라는 매너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고, 직설 화법을 즐긴다.

그리고 그 즈음의 여자아이들이 대개 그렇기는 하지만,

감정 기복이 있는데 때때로 조금 신경질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그 다수의 사람들은,

그녀와 같은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언젠가 유라는 이렇게 말했다.

 

착한 척하면 평판이 좋아지긴 하지. 하지만 결국은 다를 게 없더라고. 뒤에서는 실컷 물어뜯더라.

 

어차피 친절하게 대해도 재수 없다고 할 거고, 내 마음 편하게 굴어도 재수 없을 거면

 

나 좋을 대로 하는 게 낫지. 안 그래?

 

그래서 편할 대로 행동하니까, 이상하게 바라보고 욕하긴 해도

 

그 이상 귀찮게 하지는 않더라.”

 

이제 그 때의 내 생각이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존중할 생각도 없는 사람들끼리 억지로 교류하는 건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난 너를 이해할 수 있어, 유라. 마찬가지로 너도 나를 이해하고.

멋진 일이야.’

 

유라를 잘 안다면 그녀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일단 약속을 잘 지킨다. 간과하기 쉽지만 몹시 중요한 덕목이다.

 

그리고 유라가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하고 무시할 수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유라는 떳떳하다. 털어도 나올 먼지가 없다.

 

유라의 매력은 또 있다. 이 친구는 관심 없는 체하면서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이런 감동적인 일화가 있다.

 

언젠가 마을 친구들끼리 문제풀이 시합을 했었는데, 그날의 문제들은 속력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 작은 대회에는 엄청난 상품이 걸려 있었다.

 

무려 한정판 파인애플 후리가케 한 박스였다! 조그만 파인애플 조각들이 들어 있는 몹시 아름다운 후리가케였다.

 

내가 주로 공부하는 분야였기 때문에 상품을 얻을 자신도 있었고 그러기를 고대하고 있었는데…….

 

하필 열감기에 걸려서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했다.

 

나중에 상태가 나아지고 나서야 파인애플 후리가케를 놓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불운에 안타까워하고 있을 적에, 유라가 갑자기 방에 들어와 내게 뭔가를 건네주었다.

 

후리가케 세 봉지였다. 우승한 친구에게 얻어 온 것이었다.

 

그 친구도 나만큼이나 그 한정판을 원하고 있었고,

음식에 대해 나름의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친구였으니 그냥 줬을 리는 없었다.

 

유라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무언가를 주고 바꾸어 왔었을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눈앞의 봉지를 믿지 못하고 멍해 있다가,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몇 번이고 고맙다고 말하며 감동의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다.

 

유라는 말했다.

 

, 됐어. 옆에서 다 죽어가는 것처럼 우거지상을 하고 있으면 짜증나잖아.”

 

이렇게 답답해서 못 보겠으니 도와주겠다는 투의 말을 덧붙여 주는 것이 특히 정이 가는 특징이다.

 

나는 봉지를 안고 행복하게 웃었다. 그러자 유라도 픽 웃었다.

 

유라는 좋은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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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6 18:16

8

 

마을은 우리의 낙원이 되었다.

 

원래 살던 곳에서 여기로 갑자기 이동하는 동안 우리는 다양하고 또 두려움으로 가득 찬

추측들을 만들어냈지만 다행히도 실제와는 딴판이었다.

 

선생님들을 만나고, 아늑한 집을 만나고, 친구들을 만나는 동안 두려움은 점차 사라져 갔다.

 

날 데려온 그 유령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런 사탕발림은 대부분 진실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 경우는 아니었다.

오해하고 의심한 것이 조금 미안해질 뻔했다.

 

나중에 알게 된 바에 의하면 그는 친절함을 연습해야 했다고 한다.

 

다행히 그는 동료 요원들 중에서 가장 풍부한 감정 표현을 제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큰 업적을 달성했다!

 

 

여전히 이것저것 의심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유라는 한동안 음식에 독이 들어 있을까 걱정해서 갖가지 확인을 거친 뒤에야 식사를 했다.

물론 수상한 성분이 들어 있던 적은 없었다.

 

우리 중의 상당수는 신중한 유형의 사람이었다.

그 중에서도 더한 친구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자세는 여러모로 좋았다.

 

선생님들이 말한 대로 우리는 어떠한 기준으로 특별히 차출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마을은 정부의 주도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우리는 연합에게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이 마을에 살면서, 거창하게는 연구’, 소소하게는 탐구라 불릴 그런 일을 했다.

 

우리에겐 과제들이 계속해서 주어졌고, 그것들을 끝없이 해결해 나갔다.

 

개인이 푸는 문제도 있었고 협동 과제도 있었지만 그런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었다.

어떤 과제든 친구들과 협력해도 되었다.

 

이 마을에 살기 전의 나는 조별 과제를 싫어했다. 썩 유쾌하지 않은 추억들이 있어서 말이다.

하지만 이곳에 살게 된 뒤로는 협동을 즐기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한 집이 한 팀이었지만, 다른 집 친구들과도 얼마든지 뭔가를 같이 해 나갈 수 있었다.

 

점수가 매겨지거나 평가당한 적은 없었다. 그러니 경쟁도 거의 없었다.

 

경쟁은 순전히 재미로 하는 것일 뿐이었다.

가끔 우리끼리 방정식 빨리 풀기 시합같은 친선 경기를 진행하곤 했다.

 

 

테란 연합은 우리를 다루는 데 있어서는 몹시 영리했다.

그 무능한 관료들이 여기에 관해서는 왜 이렇게 현명했던 걸까?

처음에 걱정했던 노동력 착취나 학대 같은 일은 전혀 없었다.

 

우리는 엄청나게 좋은 대우를 받았다.

 

빈부 격차가 끔찍했던 이 국가에는 복지라는 개념이 있는지조차 의문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오래된 가문의 자제들 못지않게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 갑작스러운 풍요는 익숙하지 않은 옷 같았고, 우리는 얼떨떨하다 못해 두려워하기까지 했다.

 

시간이 흐르자 우리는 자연스럽게 누리게 되었다.

그런데 몇몇 더욱 생각 깊은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게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잊으면 안 돼.”

 

여기까지 생각하지 않았던 나머지 우리들도 이 말을 듣자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급여도 받았다.

여기서 돈이 필요할 일은 드물었기에 대개는 저축을 했다.

 

또한 우리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지냈다.

 

마을 밖으로는 무단으로 나갈 수 없었으니 우리에 갇힌 가축들의 자유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마을 안에서는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라면 뭐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굳이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을 만큼 살기 좋은 마을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그런대로 굉장한 자유도 있었던 것이다.

 

 

테란 연합의 전략은 아주 현명했다.

 

우리가 하는 탐구들은 창의력이 요구되는 분야였고,

연합이 평소 애용하는 재사회화 같은 것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정부에 감사하고 충성하며 주어지는 일들에 열정적으로 임했다.

 

 

물질적인 여유도 무시할 수 없었지만, 이 마을에 있어서 최고로 좋았던 것은 친구들이었다.

 

나는 혼자 놀기에는 일가견이 있었고, ‘혼자여도 행복하다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함께할 좋은 사람이 있다면 더 행복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어쨌거나 우리는 테란이었으니까…….

 

여기서 만난 친구들은 통하는 데가 있었다.

일단 말이 통했고, 더 나아가서 생각도 통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했다. 우리는 서로를 존경했다.

 

이 마을로 이동하고 적응하는 과정에서 내 마음은 여러 번 이렇게 외쳤다.

 

동족이다!’

 

다른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데이비드는 이렇게 말했다.

 

친구라고 할 만한 친구를 만난 게 손에 꼽을 정도였지.

그런데 여기 수십 명의 친구들이 있지 뭐야!”

 

데이비드는 약골이나 여자애 같다는 놀림을 받은 일이 많다고 한다.

아무래도 좋지 않은 운동신경과 섬세한 성격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럴 일이 없었다.

 

여긴 비슷한 동지들이 많았다.

 

사소한 예를 들면 우리는 물건을 던져서 주고받지 않는다.

던지는 사람과 받는 사람 중 적어도 하나, 대부분의 경우 둘 다 엉망이니까.

 

굳이 그걸 해보겠다고 연습해서 개선시키는 근성의 친구들도 있긴 했다…….

 

우리끼리의 친선 경기 중에 언젠가 휴지통에 휴지 던져 넣기도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많은 친구들은 이 마을에 일찍 오게 되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2489년 당시 나는 13살이었고, 다른 친구들의 나이도 13살 전후의 비슷한 나이였다.

가장 많은 나이가 15세로 3명인가 있었다.

 

그런 15년 될까 말까 하는 짧은 기간 동안에도 우리는 씁쓸한 경험들을 꽤나 많이 축적한 상태였다.

 

그러니 마을에 살게 된 우리는 행복했다.

 

 

이쯤에서 우리의 안전제일 정신이 이루어낸 아름다운 결과물을 하나 소개해야겠다.

 

그것은 대피소이다!

 

순전히 우리들이 힘과 머리를 합쳐서 구상하고, 설계하고, 건설해낸 그런 대피소였다.

 

10대 초중반의 아이들이 만들어냈다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걸작이었다!

 

이 대피소는 완성되었다고 선언된 적이 없다.

웬만큼 완전해진 뒤에도 그때그때 개조되고 보강되었다.

 

처음 제안한 사람은 자랑스럽게도 우리 집의 유라였다.

 

, 우리도 대피소 같은 거 만드는 거 어때?

우리가 민간인이라 잘 모르지만 여기저기 많이들 터뜨리고 있을 것 같거든.”

 

그다지 진지하게 제안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모두의 시선이 유라에게 향했다. 존경심이 보이는 눈빛들이었다.

 

그냥 해 본 얘기였어. 개집도 아니고 대피소를 어떻게 짓겠어?”

 

그런데 한 친구가 몹시 희망차게 말했다.

 

못할 게 뭐 있어? 한 번 해 보자!”

 

그는 앞서 얘기한 황량한 성에 사는, 근사한 모래성을 지은 바로 그 친구였다.

뭔가 만드는 데 있어서는 타고난 친구였다.

 

그 친구는 대피소의 원래 목적도 목적이지만 뭔가 짓는 것 자체가 좋아서

그렇게 극적으로 호응해 준 것이었다.

 

그런 그가 그렇게 힘차게 말하자 우리는 추진력을 얻었다.

 

그래 좋아! 도서관 가서 자료 좀 찾아볼게.”

 

멋진데! 지하에 파는 게 좋겠지?”

 

이런 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우리는 바로 시작했다.

 

여러 과정을 거쳐서, 우리는 최초의 대피 공간을 만들었다.

 

그것은 황량한 성의 지하에 만들어졌다.

모래성 건축가 친구가 엄청나게 많은 기여를 했기에 첫 번째를 그 집에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그 집에 지하실이 있었기 때문에 접근하기가 가장 좋았다.

있던 지하실을 적당히 개조했더니 괜찮은 지하 대피소가 탄생했다.

 

그 뒤 다른 집들의 지하에도 하나하나 대피소를 건설했다. 물론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작업을 하다 보면 장비가 필요해지는데,

마을에는 우리가 쓸 수 있을 만한 웬만한 도구들도 있었다!

 

에이든은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이 정부 놈들은 우리한테는 왜 이렇게 예산을 많이 부은 거야?

, 우리야 좋지만.”

 

초기의 대피소는 일반적인 무기의 공격에 대응할 수 있었다.

 

보병이나 전차가 다니는 것쯤은 끄떡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폭격기로 땅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거나 핵미사일 같은 공격을 해 온다면 좀 곤란해진다.

 

대피소가 점점 더 발전하며 그런 최첨단 공격에도 버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대피소를 보다 행복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비록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의 비상사태일 때 머무르는 공간이지만,

그럴 때일수록 마음의 안정을 찾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었다.

 

우리는 비상식량의 종류도 다양하게 했고 최대한 맛있는 것으로 준비했다.

 

비상식량은 한 집에 3개월 분량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4명이 풍족하게 먹을 때의 기준이다.

그러니 아껴 먹으면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고, 혼자 먹게 된다면 1년을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집에 한 대씩 휴대용 PC를 설치했는데 갖가지 게임과 여러 권의 책을 넣어 두었다.

 

우리가 건설한 대피소에는 또 한 가지의 엄청난 특징이 있다.

 

모든 대피소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자신이 머물고 있는 대피소가 붕괴되려 한다면 땅굴을 통해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

 

이 대피소는 우리들의 위대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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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깜찍이^^
2016.10.15 13:28

7

 

에이든 폭스(Aiden Fox), 데이비드 핸슨(David Hanson), 유라 이(Yura Yi).

같은 집에 배정된 친구들의 이름들이다.

 

에이든은 2477년생, 데이비드는 나와 같은 2476년생, 유라는 2475년생이다.

 

그날 우리는 집을 구경했다.

 

아주 근사한 집이었다.

 

나는 집을 이루는 색들에 주목했다.

 

색상, 채도, 명도, 빨강, 녹색, 파랑 수치를 제시하면 

간단한 응용 프로그램으로 그 색상들을 쉽게 불러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겠다.

 

그 빛들을 측정해 두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직접적인 이유이다.

 

그리고그 아름다운 추억을 정확하게 복원해 내야만 할 이유도 못 찾겠다.

 

집의 지붕은 짙은 푸른색이었다. 매력적인 지붕이었다.

위를 향해 큰 창문이 나 있었다.

 

천장의 지붕은 채광에도 좋았고, 누워만 있어도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돌아다니기는 귀찮지만 관찰은 해야 할 때 딱 좋다.

 

벽의 주된 색은 연두색 계열이었는데 파스텔로 그린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연하고 부드러운 색이었다.

 

집 안에 들어가 둘러보니 무려 3층이나 되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층은 여럿이 함께 있기 좋은, 거실 같은 공간이었다.

2층과 3층에는 마주 보고 있는 두 개의 방이 있었는데 하나하나의 방은 작은 집 같았다

우리 네 명에게 딱 알맞고 풍족한 집이었다.

 

 

구경하는 우리는 아주 깊은 감명을 받았다.

 

에이든은 특히 신나 보였다.

 

, 이건, 이런 멋진 집은 감히 상상도 못 했었는데! 정말 여기서 사는 거야? 믿을 수 없을 정도야!”

 

그러더니 에이든은 갑자기 우쿨렐레를 연주했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는 처음부터 쭉 그 재미있는 악기를 들고 있었다.

 

우쿨렐레에서는 아름다운 즉흥 선율이 흘러나왔다. 신 나지만 슬픈 음악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듣기 좋기로는 최고의 연주였다. 지금도 기억날 정도이니 말 다 했다.

 

 

나는 노래하는 작은 카나리아

 

아름다운 목소리의 작은 새

 

나는 어미 찾는 어린 카나리아

 

목청 높여 슬피 우는 작은 새

 

나는 희망 잃은 야생 카나리아

 

다시는 울지 않을 작은 새

 

절대 길들여지지 않을 거야

 

그들을 위해 노래하지 않아

 

 

이 노래와 이야기가 연결되는 노래가 여러 곡 있다.

이어지는 노래들도 생각나는 대로 전하고 싶다.

 

집을 웬만큼 둘러보고 나자 우리는 1층의 안락한 거실에 모여 앉아서 즐거운 대화를 했다.

 

처음에는 이 호사스러운 집에 대한 감탄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다가 슬슬 미래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막연한 불안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려 했다. 그때 에이든이 말했다.

 

이런, 이런. 너무 걱정이 많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뭘 걱정해! 그냥 즐겨!”

 

데이비드가 차분하게 동의했다.

 

맞는 말이야. 아까 그 안내자들 말대로라면 아마도 우리에게 뭔가 특별한 투자를 하려는 것 같은데.”

 

유라와 나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가, 잠시 후 깨닫고 살짝 웃었다.

 

우리는 즐겁게 대화했다. 집에 있는 갖가지 놀이감도 적극적으로 꺼냈다.

 

 

그날 저녁, 우리에게는 2층과 3층의 네 방의 각각의 주인을 정하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그건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앞으로도 많은 과제가 등장할 텐데, 그것들은 대개 선생님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2층 왼쪽 방은 데이비드, 2층 오른쪽은 에이든, 3층 왼쪽은 유라, 그리고 3층 오른쪽은 나의 방이 되었다.

 

왼쪽과 오른쪽의 기준은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보이는 방향이다.

 

우리는 각자의 방에서 잠을 청했다.

풀 짐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따로 할 일도 없었다.

 

 

깊이 잠들어 있던 때, 노크 소리가 들려 문을 조금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옆방 유라도 자다 깨서 밖에 나가 팔짱을 끼고 졸린 눈으로 서 있었다.

 

찾아온 존재들은 데이비드와 에이든이었다. 데이비드가 말했다.

 

깨워서 미안. 그런데 꼭 와야 했어. 지금 하늘이 굉장하거든.”

 

에이든이 말했다.

 

맞아. 완전 장관이야! 꼭대기층에서 보면 더 좋겠더라고.”

 

우리는 누워서 바로 위에 보이는 하늘을 보았다.

 

유성우였다. 엄청나게 많은 별똥별들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그때의 나의 감상을 표현할 적당한 단어를 찾기는 힘들 것이다.

 

나중에 이야기해 보니 그 날 그 유성우를 본 건 우리뿐이었다.

한밤중이어서 다들 몰랐던 것이었다.

그 때 잠이 깬 에이든이 우연히 봤던 것이었다.

 

그 유성우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기억하고 싶을 때, 눈을 감으면 그 때의 영상이 펼쳐진다.

 

유성우가 끝나자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 마저 단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에 또 하나의 간단한 과제가 주어졌다.

 

집의 이름을 작명하는 것이었다

선생님들의 말에 의하면처음에는 ‘1’, ‘2’, ‘3이런 식으로 번호로 구별하려 했지만

특색 있고 재미있는 이름을 스스로 짓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우리 네 명은 좋은 이름을 짓기 위해 의논했다.

 

금세 지을 줄 알았는데 꽤 오래 고민해야 했다.

 

그렇게 지은 우리 집의 이름은 별똥별 쏟아지는 지붕이었다.

어제 본 유성우에서 나온 이름이었다.

 

실제로 지붕에 별똥별이 쏟아진다면 영 좋지 않겠지만,

그 이름은 아주 멋진 이름이었다.

 

다른 집도 마찬가지로 이름을 만들었다. 재미있는 이름이 많이 나왔다.

 

4명의 이름에서 글자를 가져와 만든 이름도 있었다.

 

방울나무라는 곳도 있었다. 그 집에 스즈키(Suzuki)라는 성을 가진 쌍둥이가 있었는데 

그 성을 한자라는 표의문자로 쓰면 방울나무라는 뜻이 된다고 한다.

또 방울나무인지 자두나무인지는 몰라도 그곳에는 진짜 나무도 있었다.

 

초록색 창문이라는 집도 있었는데, 덩굴식물이 창문까지 자라나 있어서 그런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푸른 외투의 집도 있었다. 그 집의 외벽은 푸른색이었다. 독특한 색이었다.

 

청금석을 닮은 그런 푸른색이었는데, 그 벽을 쳐다보고 있으면 아이디어가 잘 떠올랐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하여튼 그랬다. 나를 비롯한 다른 집의 사람들도 종종 그 파란 벽에 머리를 대고 있었다.

 

 

황량한 성이라는 곳도 있었는데,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돌로 된 울타리가 있었는데 마치 성벽 같았고

마당은 온통 모래밭이어서 사막 한가운데의 성 같다는 것이었다.

 

그 집의 한 친구가 언젠가 근사한 모래성을 만들었었는데

며칠 후에 많은 비가 내리는 바람에 성이 없어져서 통곡했다는 일화도 있다

하지만 초기의 비극을 극복하고 더 멋진 작품을 만들었다. 그 친구는 타고난 건축가였다.

 

이것보다 많은 집이 있었지만 그 이름들을 여기에 다 밝히지는 않겠다

아마도 몇 집은 이 뒤의 이야기에서 언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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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깜찍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