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11 17:11

9

 

별똥별 쏟아지는 지붕아래에 함께 사는 세 친구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 친구들과의 모든 추억을 풀어놓고 싶지만 그러면 지나치게 긴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러니 기억들을 고르고 골라서 여기서는 조금 간단하게 써야겠다.

 

어쩌면 훗날 나머지 기억들도 모두 기록으로 만들어 놓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럴 만한 시간도 충분히 있다. 지금의 이 행성에서는 말이다.

 

 

바쁜 연구원으로 지내다가 여유로워지니 처음에는 기분이 이상했다.

심지어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끼기도 했다.

 

쓸데없고 배부른 걱정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관점은 인정한다.

 

이와 관련해서 잭과 대화한 적이 있다.

 

나도 처음엔 그랬어.

 

바쁠 때는 간절하게 쉬고 싶었지. 어딘가로 떠나 버리고 싶었어.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됐지! 여기로 떠나 왔고, 얼마든지 쉴 수 있게 됐어.

 

그런데 그토록 바라던 여유를 찾으니까 불안하더라고. 할 게 없으니까 허전해졌어. 아이러니지.”

 

역시 잭 너도 마찬가지였구나.”

 

그렇지만 여기도 나름 일 있다?

 

방금 허전할 정도로 할 게 없다고 한 때는 처음엔 함선에서 같이 온 물자들로 그럭저럭 지낼 때였고,

나중엔 달라졌지.

 

아예 여기 정착할 마음을 먹고 한창 집도 짓고 그럴 때는 꽤 분주했어.

직접 농사짓고 가축도 기르려면 그것도 그다지 만만하지 않더라고.”

 

나는 이제 와서 이미 웬만큼 터전이 마련돼 있으니까 더 급격히 할 일이 없는 것 같네!”

 

그런가? 그래도 이제 네가 도울 일들이 많을 거야. 과학자가 필요할 만한 데가 많아서.

 

하여튼 너도 마음의 평화를 얻으면 좋겠다!

너도 이 행성에 살다 보면 진정한 내면의 평화를 찾게 되겠지.”

 

그러게. 그나저나 여기 동료들은 종족 불문하고 비슷한 점이 또 있는 것 같다.

다들 성실이 몸에 밴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맞아, 다 열심히 살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참 이상적인 모습이지.”

 

그런 건 학습하는 걸까, 타고나는 걸까……?”

 

좀 어려운 문젠데.

 

, 저기 파인애플 사탕 먹어 봐. 파티 때 쓰고 남은 거야.

네가 좋아한다니까 로즈 씨가 주더라고. 샬롯의 사탕은 예술이지! .”

 

 

잠시 현재의 이야기를 했다.

 

이제 별똥별 쏟아지는 지붕아래에 함께 사는 세 친구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

 

 

일단 옆방 친구인 이유라부터 소개한다.

 

유라의 검은 눈과 머리카락은 아름답다.

어두운 색의 눈동자는 꼭 그 안에 우주를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유라는 머리가 길면 거추장스럽다며 짧은 머리를 유지한다.

앞머리 역시 얼굴에 닿으면 짜증이 나기 때문에 시원하게 넘기는 것을 좋아한다.

 

좀 날카로운 인상이지만, 그런 날이 선 외관은 때로 묘하게 매력적일 수 있다.

유라가 이런 경우다.

 

유라가 주로 파고들어가는 분야는 화학이다. 유라가 실험을 할 때면 대개는 내가 조수가 된다.

 

이 친구는 암기력이 끝내준다. 그래서인지 언어적 능력도 굉장하다.

유라는 취미로 고문서 해독을 즐긴다.

 

오래된 문서라는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료실에 가면 오래된 자료들이 많았다.

종이책 역시 오래된 것이 많이 있었다.

 

그런 고어로 된 문서들은 읽어도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유라가 그것들을 요즘 말로 번역하는 것이다. 존경할 만한 능력이었다.

 

그래서 유라는 재미있는 옛이야기를 많이 알았다.

속담이나 명언 같은 것도 유라와 얘기하다 보면 많이 주워들을 수 있다. 그리고 역사에도 빠삭하다.

 

이 글에 있는 인상적인 글귀나 혹은 몇 세기쯤 이전의 시대와 관련 있을 것 같은 인용은

거의 유라에게 들은 것이다.

 

유라는 꼼꼼하고 예민하다. 유라의 방은 늘 질서정연하다.

물건의 위치가 바뀌면 안 되고, 모든 물건들은 나름의 좌표가 정해진 것처럼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다.

 

화학 실험을 즐기는 사람에게 그런 성격은 좋다. 약품 정리를 잘못해서 섞여 버리면 매우 곤란하니까!

 

언젠가 한 덜렁대는 친구가 달고나를 만든다면서 설탕도 아닌 소금에 불을 붙인 적이 있는데

안 좋은 의미로 장관이었다.

 

하루는 어떤 친구가 유라에게 지우개를 빌린 적이 있는데, 지우개를 뾰족한 모서리 쪽으로 사용했다!

 

그 친구는 다른 집의 친구였고, 유라의 지우개는 한쪽으로만 써야 했다는 것을 몰랐다.

   

유라는 , 괜찮아. 미리 안 알려 줬으니까 당연히 모르지.”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날 유라는 지우개를 좀 자주 만지작거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유라는 매너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고, 직설 화법을 즐긴다.

그리고 그 즈음의 여자아이들이 대개 그렇기는 하지만,

감정 기복이 있는데 때때로 조금 신경질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그 다수의 사람들은,

그녀와 같은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언젠가 유라는 이렇게 말했다.

 

착한 척하면 평판이 좋아지긴 하지. 하지만 결국은 다를 게 없더라고. 뒤에서는 실컷 물어뜯더라.

 

어차피 친절하게 대해도 재수 없다고 할 거고, 내 마음 편하게 굴어도 재수 없을 거면

 

나 좋을 대로 하는 게 낫지. 안 그래?

 

그래서 편할 대로 행동하니까, 이상하게 바라보고 욕하긴 해도

 

그 이상 귀찮게 하지는 않더라.”

 

이제 그 때의 내 생각이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존중할 생각도 없는 사람들끼리 억지로 교류하는 건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난 너를 이해할 수 있어, 유라. 마찬가지로 너도 나를 이해하고.

멋진 일이야.’

 

유라를 잘 안다면 그녀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일단 약속을 잘 지킨다. 간과하기 쉽지만 몹시 중요한 덕목이다.

 

그리고 유라가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하고 무시할 수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유라는 떳떳하다. 털어도 나올 먼지가 없다.

 

유라의 매력은 또 있다. 이 친구는 관심 없는 체하면서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이런 감동적인 일화가 있다.

 

언젠가 마을 친구들끼리 문제풀이 시합을 했었는데, 그날의 문제들은 속력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 작은 대회에는 엄청난 상품이 걸려 있었다.

 

무려 한정판 파인애플 후리가케 한 박스였다! 조그만 파인애플 조각들이 들어 있는 몹시 아름다운 후리가케였다.

 

내가 주로 공부하는 분야였기 때문에 상품을 얻을 자신도 있었고 그러기를 고대하고 있었는데…….

 

하필 열감기에 걸려서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했다.

 

나중에 상태가 나아지고 나서야 파인애플 후리가케를 놓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불운에 안타까워하고 있을 적에, 유라가 갑자기 방에 들어와 내게 뭔가를 건네주었다.

 

후리가케 세 봉지였다. 우승한 친구에게 얻어 온 것이었다.

 

그 친구도 나만큼이나 그 한정판을 원하고 있었고,

음식에 대해 나름의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친구였으니 그냥 줬을 리는 없었다.

 

유라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무언가를 주고 바꾸어 왔었을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눈앞의 봉지를 믿지 못하고 멍해 있다가,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몇 번이고 고맙다고 말하며 감동의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다.

 

유라는 말했다.

 

, 됐어. 옆에서 다 죽어가는 것처럼 우거지상을 하고 있으면 짜증나잖아.”

 

이렇게 답답해서 못 보겠으니 도와주겠다는 투의 말을 덧붙여 주는 것이 특히 정이 가는 특징이다.

 

나는 봉지를 안고 행복하게 웃었다. 그러자 유라도 픽 웃었다.

 

유라는 좋은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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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6 18:16

8

 

마을은 우리의 낙원이 되었다.

 

원래 살던 곳에서 여기로 갑자기 이동하는 동안 우리는 다양하고 또 두려움으로 가득 찬

추측들을 만들어냈지만 다행히도 실제와는 딴판이었다.

 

선생님들을 만나고, 아늑한 집을 만나고, 친구들을 만나는 동안 두려움은 점차 사라져 갔다.

 

날 데려온 그 유령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런 사탕발림은 대부분 진실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 경우는 아니었다.

오해하고 의심한 것이 조금 미안해질 뻔했다.

 

나중에 알게 된 바에 의하면 그는 친절함을 연습해야 했다고 한다.

 

다행히 그는 동료 요원들 중에서 가장 풍부한 감정 표현을 제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큰 업적을 달성했다!

 

 

여전히 이것저것 의심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유라는 한동안 음식에 독이 들어 있을까 걱정해서 갖가지 확인을 거친 뒤에야 식사를 했다.

물론 수상한 성분이 들어 있던 적은 없었다.

 

우리 중의 상당수는 신중한 유형의 사람이었다.

그 중에서도 더한 친구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자세는 여러모로 좋았다.

 

선생님들이 말한 대로 우리는 어떠한 기준으로 특별히 차출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마을은 정부의 주도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우리는 연합에게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이 마을에 살면서, 거창하게는 연구’, 소소하게는 탐구라 불릴 그런 일을 했다.

 

우리에겐 과제들이 계속해서 주어졌고, 그것들을 끝없이 해결해 나갔다.

 

개인이 푸는 문제도 있었고 협동 과제도 있었지만 그런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었다.

어떤 과제든 친구들과 협력해도 되었다.

 

이 마을에 살기 전의 나는 조별 과제를 싫어했다. 썩 유쾌하지 않은 추억들이 있어서 말이다.

하지만 이곳에 살게 된 뒤로는 협동을 즐기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한 집이 한 팀이었지만, 다른 집 친구들과도 얼마든지 뭔가를 같이 해 나갈 수 있었다.

 

점수가 매겨지거나 평가당한 적은 없었다. 그러니 경쟁도 거의 없었다.

 

경쟁은 순전히 재미로 하는 것일 뿐이었다.

가끔 우리끼리 방정식 빨리 풀기 시합같은 친선 경기를 진행하곤 했다.

 

 

테란 연합은 우리를 다루는 데 있어서는 몹시 영리했다.

그 무능한 관료들이 여기에 관해서는 왜 이렇게 현명했던 걸까?

처음에 걱정했던 노동력 착취나 학대 같은 일은 전혀 없었다.

 

우리는 엄청나게 좋은 대우를 받았다.

 

빈부 격차가 끔찍했던 이 국가에는 복지라는 개념이 있는지조차 의문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오래된 가문의 자제들 못지않게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 갑작스러운 풍요는 익숙하지 않은 옷 같았고, 우리는 얼떨떨하다 못해 두려워하기까지 했다.

 

시간이 흐르자 우리는 자연스럽게 누리게 되었다.

그런데 몇몇 더욱 생각 깊은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게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잊으면 안 돼.”

 

여기까지 생각하지 않았던 나머지 우리들도 이 말을 듣자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급여도 받았다.

여기서 돈이 필요할 일은 드물었기에 대개는 저축을 했다.

 

또한 우리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지냈다.

 

마을 밖으로는 무단으로 나갈 수 없었으니 우리에 갇힌 가축들의 자유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마을 안에서는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라면 뭐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굳이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을 만큼 살기 좋은 마을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그런대로 굉장한 자유도 있었던 것이다.

 

 

테란 연합의 전략은 아주 현명했다.

 

우리가 하는 탐구들은 창의력이 요구되는 분야였고,

연합이 평소 애용하는 재사회화 같은 것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정부에 감사하고 충성하며 주어지는 일들에 열정적으로 임했다.

 

 

물질적인 여유도 무시할 수 없었지만, 이 마을에 있어서 최고로 좋았던 것은 친구들이었다.

 

나는 혼자 놀기에는 일가견이 있었고, ‘혼자여도 행복하다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함께할 좋은 사람이 있다면 더 행복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어쨌거나 우리는 테란이었으니까…….

 

여기서 만난 친구들은 통하는 데가 있었다.

일단 말이 통했고, 더 나아가서 생각도 통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했다. 우리는 서로를 존경했다.

 

이 마을로 이동하고 적응하는 과정에서 내 마음은 여러 번 이렇게 외쳤다.

 

동족이다!’

 

다른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데이비드는 이렇게 말했다.

 

친구라고 할 만한 친구를 만난 게 손에 꼽을 정도였지.

그런데 여기 수십 명의 친구들이 있지 뭐야!”

 

데이비드는 약골이나 여자애 같다는 놀림을 받은 일이 많다고 한다.

아무래도 좋지 않은 운동신경과 섬세한 성격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럴 일이 없었다.

 

여긴 비슷한 동지들이 많았다.

 

사소한 예를 들면 우리는 물건을 던져서 주고받지 않는다.

던지는 사람과 받는 사람 중 적어도 하나, 대부분의 경우 둘 다 엉망이니까.

 

굳이 그걸 해보겠다고 연습해서 개선시키는 근성의 친구들도 있긴 했다…….

 

우리끼리의 친선 경기 중에 언젠가 휴지통에 휴지 던져 넣기도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많은 친구들은 이 마을에 일찍 오게 되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2489년 당시 나는 13살이었고, 다른 친구들의 나이도 13살 전후의 비슷한 나이였다.

가장 많은 나이가 15세로 3명인가 있었다.

 

그런 15년 될까 말까 하는 짧은 기간 동안에도 우리는 씁쓸한 경험들을 꽤나 많이 축적한 상태였다.

 

그러니 마을에 살게 된 우리는 행복했다.

 

 

이쯤에서 우리의 안전제일 정신이 이루어낸 아름다운 결과물을 하나 소개해야겠다.

 

그것은 대피소이다!

 

순전히 우리들이 힘과 머리를 합쳐서 구상하고, 설계하고, 건설해낸 그런 대피소였다.

 

10대 초중반의 아이들이 만들어냈다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걸작이었다!

 

이 대피소는 완성되었다고 선언된 적이 없다.

웬만큼 완전해진 뒤에도 그때그때 개조되고 보강되었다.

 

처음 제안한 사람은 자랑스럽게도 우리 집의 유라였다.

 

, 우리도 대피소 같은 거 만드는 거 어때?

우리가 민간인이라 잘 모르지만 여기저기 많이들 터뜨리고 있을 것 같거든.”

 

그다지 진지하게 제안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모두의 시선이 유라에게 향했다. 존경심이 보이는 눈빛들이었다.

 

그냥 해 본 얘기였어. 개집도 아니고 대피소를 어떻게 짓겠어?”

 

그런데 한 친구가 몹시 희망차게 말했다.

 

못할 게 뭐 있어? 한 번 해 보자!”

 

그는 앞서 얘기한 황량한 성에 사는, 근사한 모래성을 지은 바로 그 친구였다.

뭔가 만드는 데 있어서는 타고난 친구였다.

 

그 친구는 대피소의 원래 목적도 목적이지만 뭔가 짓는 것 자체가 좋아서

그렇게 극적으로 호응해 준 것이었다.

 

그런 그가 그렇게 힘차게 말하자 우리는 추진력을 얻었다.

 

그래 좋아! 도서관 가서 자료 좀 찾아볼게.”

 

멋진데! 지하에 파는 게 좋겠지?”

 

이런 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우리는 바로 시작했다.

 

여러 과정을 거쳐서, 우리는 최초의 대피 공간을 만들었다.

 

그것은 황량한 성의 지하에 만들어졌다.

모래성 건축가 친구가 엄청나게 많은 기여를 했기에 첫 번째를 그 집에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그 집에 지하실이 있었기 때문에 접근하기가 가장 좋았다.

있던 지하실을 적당히 개조했더니 괜찮은 지하 대피소가 탄생했다.

 

그 뒤 다른 집들의 지하에도 하나하나 대피소를 건설했다. 물론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작업을 하다 보면 장비가 필요해지는데,

마을에는 우리가 쓸 수 있을 만한 웬만한 도구들도 있었다!

 

에이든은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이 정부 놈들은 우리한테는 왜 이렇게 예산을 많이 부은 거야?

, 우리야 좋지만.”

 

초기의 대피소는 일반적인 무기의 공격에 대응할 수 있었다.

 

보병이나 전차가 다니는 것쯤은 끄떡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폭격기로 땅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거나 핵미사일 같은 공격을 해 온다면 좀 곤란해진다.

 

대피소가 점점 더 발전하며 그런 최첨단 공격에도 버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대피소를 보다 행복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비록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의 비상사태일 때 머무르는 공간이지만,

그럴 때일수록 마음의 안정을 찾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었다.

 

우리는 비상식량의 종류도 다양하게 했고 최대한 맛있는 것으로 준비했다.

 

비상식량은 한 집에 3개월 분량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4명이 풍족하게 먹을 때의 기준이다.

그러니 아껴 먹으면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고, 혼자 먹게 된다면 1년을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집에 한 대씩 휴대용 PC를 설치했는데 갖가지 게임과 여러 권의 책을 넣어 두었다.

 

우리가 건설한 대피소에는 또 한 가지의 엄청난 특징이 있다.

 

모든 대피소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자신이 머물고 있는 대피소가 붕괴되려 한다면 땅굴을 통해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

 

이 대피소는 우리들의 위대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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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깜찍이^^
2016.10.15 13:28

7

 

에이든 폭스(Aiden Fox), 데이비드 핸슨(David Hanson), 유라 이(Yura Yi).

같은 집에 배정된 친구들의 이름들이다.

 

에이든은 2477년생, 데이비드는 나와 같은 2476년생, 유라는 2475년생이다.

 

그날 우리는 집을 구경했다.

 

아주 근사한 집이었다.

 

나는 집을 이루는 색들에 주목했다.

 

색상, 채도, 명도, 빨강, 녹색, 파랑 수치를 제시하면 

간단한 응용 프로그램으로 그 색상들을 쉽게 불러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겠다.

 

그 빛들을 측정해 두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직접적인 이유이다.

 

그리고그 아름다운 추억을 정확하게 복원해 내야만 할 이유도 못 찾겠다.

 

집의 지붕은 짙은 푸른색이었다. 매력적인 지붕이었다.

위를 향해 큰 창문이 나 있었다.

 

천장의 지붕은 채광에도 좋았고, 누워만 있어도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돌아다니기는 귀찮지만 관찰은 해야 할 때 딱 좋다.

 

벽의 주된 색은 연두색 계열이었는데 파스텔로 그린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연하고 부드러운 색이었다.

 

집 안에 들어가 둘러보니 무려 3층이나 되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층은 여럿이 함께 있기 좋은, 거실 같은 공간이었다.

2층과 3층에는 마주 보고 있는 두 개의 방이 있었는데 하나하나의 방은 작은 집 같았다

우리 네 명에게 딱 알맞고 풍족한 집이었다.

 

 

구경하는 우리는 아주 깊은 감명을 받았다.

 

에이든은 특히 신나 보였다.

 

, 이건, 이런 멋진 집은 감히 상상도 못 했었는데! 정말 여기서 사는 거야? 믿을 수 없을 정도야!”

 

그러더니 에이든은 갑자기 우쿨렐레를 연주했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는 처음부터 쭉 그 재미있는 악기를 들고 있었다.

 

우쿨렐레에서는 아름다운 즉흥 선율이 흘러나왔다. 신 나지만 슬픈 음악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듣기 좋기로는 최고의 연주였다. 지금도 기억날 정도이니 말 다 했다.

 

 

나는 노래하는 작은 카나리아

 

아름다운 목소리의 작은 새

 

나는 어미 찾는 어린 카나리아

 

목청 높여 슬피 우는 작은 새

 

나는 희망 잃은 야생 카나리아

 

다시는 울지 않을 작은 새

 

절대 길들여지지 않을 거야

 

그들을 위해 노래하지 않아

 

 

이 노래와 이야기가 연결되는 노래가 여러 곡 있다.

이어지는 노래들도 생각나는 대로 전하고 싶다.

 

집을 웬만큼 둘러보고 나자 우리는 1층의 안락한 거실에 모여 앉아서 즐거운 대화를 했다.

 

처음에는 이 호사스러운 집에 대한 감탄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다가 슬슬 미래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막연한 불안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려 했다. 그때 에이든이 말했다.

 

이런, 이런. 너무 걱정이 많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뭘 걱정해! 그냥 즐겨!”

 

데이비드가 차분하게 동의했다.

 

맞는 말이야. 아까 그 안내자들 말대로라면 아마도 우리에게 뭔가 특별한 투자를 하려는 것 같은데.”

 

유라와 나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가, 잠시 후 깨닫고 살짝 웃었다.

 

우리는 즐겁게 대화했다. 집에 있는 갖가지 놀이감도 적극적으로 꺼냈다.

 

 

그날 저녁, 우리에게는 2층과 3층의 네 방의 각각의 주인을 정하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그건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앞으로도 많은 과제가 등장할 텐데, 그것들은 대개 선생님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2층 왼쪽 방은 데이비드, 2층 오른쪽은 에이든, 3층 왼쪽은 유라, 그리고 3층 오른쪽은 나의 방이 되었다.

 

왼쪽과 오른쪽의 기준은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보이는 방향이다.

 

우리는 각자의 방에서 잠을 청했다.

풀 짐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따로 할 일도 없었다.

 

 

깊이 잠들어 있던 때, 노크 소리가 들려 문을 조금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옆방 유라도 자다 깨서 밖에 나가 팔짱을 끼고 졸린 눈으로 서 있었다.

 

찾아온 존재들은 데이비드와 에이든이었다. 데이비드가 말했다.

 

깨워서 미안. 그런데 꼭 와야 했어. 지금 하늘이 굉장하거든.”

 

에이든이 말했다.

 

맞아. 완전 장관이야! 꼭대기층에서 보면 더 좋겠더라고.”

 

우리는 누워서 바로 위에 보이는 하늘을 보았다.

 

유성우였다. 엄청나게 많은 별똥별들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그때의 나의 감상을 표현할 적당한 단어를 찾기는 힘들 것이다.

 

나중에 이야기해 보니 그 날 그 유성우를 본 건 우리뿐이었다.

한밤중이어서 다들 몰랐던 것이었다.

그 때 잠이 깬 에이든이 우연히 봤던 것이었다.

 

그 유성우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기억하고 싶을 때, 눈을 감으면 그 때의 영상이 펼쳐진다.

 

유성우가 끝나자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 마저 단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에 또 하나의 간단한 과제가 주어졌다.

 

집의 이름을 작명하는 것이었다

선생님들의 말에 의하면처음에는 ‘1’, ‘2’, ‘3이런 식으로 번호로 구별하려 했지만

특색 있고 재미있는 이름을 스스로 짓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우리 네 명은 좋은 이름을 짓기 위해 의논했다.

 

금세 지을 줄 알았는데 꽤 오래 고민해야 했다.

 

그렇게 지은 우리 집의 이름은 별똥별 쏟아지는 지붕이었다.

어제 본 유성우에서 나온 이름이었다.

 

실제로 지붕에 별똥별이 쏟아진다면 영 좋지 않겠지만,

그 이름은 아주 멋진 이름이었다.

 

다른 집도 마찬가지로 이름을 만들었다. 재미있는 이름이 많이 나왔다.

 

4명의 이름에서 글자를 가져와 만든 이름도 있었다.

 

방울나무라는 곳도 있었다. 그 집에 스즈키(Suzuki)라는 성을 가진 쌍둥이가 있었는데 

그 성을 한자라는 표의문자로 쓰면 방울나무라는 뜻이 된다고 한다.

또 방울나무인지 자두나무인지는 몰라도 그곳에는 진짜 나무도 있었다.

 

초록색 창문이라는 집도 있었는데, 덩굴식물이 창문까지 자라나 있어서 그런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푸른 외투의 집도 있었다. 그 집의 외벽은 푸른색이었다. 독특한 색이었다.

 

청금석을 닮은 그런 푸른색이었는데, 그 벽을 쳐다보고 있으면 아이디어가 잘 떠올랐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하여튼 그랬다. 나를 비롯한 다른 집의 사람들도 종종 그 파란 벽에 머리를 대고 있었다.

 

 

황량한 성이라는 곳도 있었는데,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돌로 된 울타리가 있었는데 마치 성벽 같았고

마당은 온통 모래밭이어서 사막 한가운데의 성 같다는 것이었다.

 

그 집의 한 친구가 언젠가 근사한 모래성을 만들었었는데

며칠 후에 많은 비가 내리는 바람에 성이 없어져서 통곡했다는 일화도 있다

하지만 초기의 비극을 극복하고 더 멋진 작품을 만들었다. 그 친구는 타고난 건축가였다.

 

이것보다 많은 집이 있었지만 그 이름들을 여기에 다 밝히지는 않겠다

아마도 몇 집은 이 뒤의 이야기에서 언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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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4 22:16

6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이동했다. 하필 아무도 시계가 없어서 시간의 흐름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더 길게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다.

 

초반처럼 신나게 놀기만 했다면 훨씬 더 짧게 느껴졌겠지만…….

 

어쨌든 도착하기도 전에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어딘가에 도착했다. ‘진짜타소니스였다.

 

잠깐, 이러면가짜 타소니스도 있다는 것이 되는 건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도록 만드는,

진짜’, ‘정말’, ‘사실’, ‘솔직히 말해서같은 말은 좋아하지 않는다.

 

하도 많이 입력되다 보니 가끔 무의식적으로 출력되지만 가급적 덜 쓰려고 한다.

 

꼭 필요한 때에는 그런 말들을 쓴다. 그런 말들이 없으면 부자연스러워지는 상황이 제법 많다

거짓말쟁이들이 얼마나 많았으면 이렇게 된 걸까.

 

이야기가 완전히 샛길로 가기 전에 타소니스로 돌아가야겠다.

 

 

한 정거장에 도착했다.

 

조종사는 우리를 내리게 한 뒤 비행기를 몰고 어딘가로 떠났다.

그때는 밤이었다. 빛은 낮 못지않게 많았지만 밤이었다.

 

모두 코랄에서 온 우리는 타소니스를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기껏해야 며칠 전에 처음 만났지만, 우리는 강한 동료애로 연결되어 있었다.

우린 어깨동무를 하고 서서 정거장의 야경을 감상했다.

 

정거장에는 별로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새로운 성인 인솔자 한 명이 나타났다. 그에 대해서는 별로 알아낸 것이 없었다

그저 운전에 능숙한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자동차를 타고 이동했다. 8명이나 탔지만 좁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우리는 첨단 도시들을 계속 지나갔다.

도시의 풍경이야 코랄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새로운 곳에는 새로운 맛이 있었다.

 

우리는 자동차를 처음 타 보는 아이들처럼 창문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있었다.

 

아름답지만 숨 막히는 도시의 야경이 한동안 펼쳐졌다.

 

끝이 없을 것만 같았지만, 어느 순간 창밖의 풍경은 확 바뀌었다.

중심부를 벗어나 외곽 지역으로 이동하자 안 보이던 별이 보였다.

 

빨리 움직이고 있었는데도 한가로운 그림이었다.

 

우리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탁 트인 풍경, 그리고 한결 깨끗한 공기.

 

꼭 청량음료 같았다오늘이 우주 멸망 전날인 양 게걸스럽게 기름진 고기를 먹어치우다

마시는 사이다의 첫 모금만큼이나 시원했다.

 

자동차는 우리의 최종 목적지에 멈추어 섰다. 운전하던 사람은 자동차를 몰고 어딘가로 떠났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마을이었다.

 

마을은 타소니스 외곽 지역의 자연 속에 있었다.

 

우리 7명이 그 전원적인 마을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제법 와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도착한 뒤에도 다른 사람들이 탄 자동차가 더 도착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해가 뜨고 아침이 되었다.

일출은 생각을 잊게 할 정도였다.

 

그곳에 온 사람들은 전부 아이들이었다.

 

갑자기 납치되어 이곳에 모이게 된 우리는 갖가지 궁금증으로 가득 차 웅성거렸다.

 

우리 같은 어린애들을 데리고 뭘 하려는 거야?”

 

어린애들만 모은 이유를 알겠는데. 다루기 쉽잖아.”

 

하긴 애들이 돈 안 주고 부리기도 좋지. 뭐야, 그럼 이거 무슨강제노동 같은 거야?”

 

, 안 좋아, 안 좋아. 끔찍해!”

 

저기, 알고 있어? 이거 정부에서 주도하는 것 같은데.”

 

, 정부?”

 

대충 그런 눈치였어. 지금까지 우릴 옮기던 사람들도 거의 군인이나 공무원 같았단 말이야

그리고 비행기에도 테란 연합 국기가 있었다고.”

 

, 앞으로 뭔 일이 일어날지 도저히 예상이 안 되는데.”

 

그러고 보니 더 이상 차가 안 오나 봐! 마지막 차가 온 지 꽤 됐는데.”

 

그럼 이제 다 온 건가?”

 

잠깐, 여기 우리밖에 없는 거야? 어쩌라는 거지?”

 

갖가지 대화들이 오고 가던 도중, 한 건물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나왔다.

6명의 사람들은 모두 성인이었고 선생님이나 연구자의 느낌이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우리에게 말했다.

 

모두 60명이 도착해 있어야 합니다. 인원을 확인할 테니 잠시 움직임을 자제해 주세요.”

 

인원에 오차는 없었다.

 

여러분은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다양한 곳에서 특별히 선발되어 온 사람들입니다.

 

어떤 기준으로 뽑힌 것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차차 알게 될 것입니다. 이미 눈치를 챈 친구들도 있는 것 같네요.

 

그리고 여러분은 앞으로 이 마을에서 살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무료로 많은 혜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일단 마을 전체를 돌도록 하죠. 모두 우리를 따라오세요.

 

줄을 서면 더 좋습니다. 선택은 자유지만요.”

 

우리 60명은 이럴 때는 질서가 있는 것이 낫다고 합의했다

그리고 아주 반듯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대열을 만들었다.

 

우리는 마을을 돌며 구경했다. 6인의 인솔자들의 설명도 있었다.

 

6인의 인솔자들은 앞으로 선생님이라는 좀 덜 딱딱한 용어로 대체하겠다.

 

 

마을에는 10채가 넘는 집들이 있었다.

그 집들은 모두 아름다운 단독 주택이었다.

 

그리고 식당이 있었다. 학교의 구내식당 비슷한 곳이었다.

식사를 집에서 할 수도 있었지만 이 식당에서 할 수도 있었다

우리는 원할 때 원하는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었다.

 

슈퍼도 있었다. 필요한 것은 웬만하면 다 있는 곳이었다

만약 그곳에 없는 것을 원한다면 신청하면 된다. 그러면 도시에서 물건을 보내 주었다.

 

아주 매력적인 실험실도 있었다. 위험한 재료들을 사용할 때는 선생님이 함께했다

물론 안전에 관한 규칙을 잘 지킨다면 그다지 문제될 일이 없었다.

 

컴퓨터 등의 첨단 장비들을 모아 둔 건물도 있었다. 집에도 컴퓨터 등 필요한 기계들이 있었지만

보다 전문적이고 성능이 좋은 것이 필요하다면 그곳을 이용했다.

 

자료실도 있었다. 자료실이라 불러도 좋고 도서실이라 불러도 좋은 곳이었다. 그곳에는 많은 문서들이 있었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종이책 열람실도 있었다

그 비싼 종이책을 그렇게나 많이 가져다 놓았다는 것은 굉장한 투자를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종이책만의 느낌에 반했다. 다른 여러 친구들도 비록 여러 면에서 효율이 떨어지지만 

그럼에도 매력적인 종이책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것들 외에도 많은 시설들이 있었다. 필요한 건 다 있었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이 훌륭한 마을에 사는 사람은 60명의 아이들과 6명의 선생님이었다.

 

선생님들은 딱 선생님정도의 역할을 했다.

그리고 많은 일상적인 노동들은 컴퓨터와 로봇의 몫이었다.

 

 

마을을 다 둘러본 뒤 선생님이 말했다.

 

이제 여러분은 한 집에 4명씩 배치될 것입니다.”

 

선생님들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한 집에 4명씩 들어갔다.

 

나 역시 한 단독 주택에 배치되어 오랫동안 함께할 친구들과 대면했다.

 

여전히 아침이었다.

 

그날 하루는 온전히 우리끼리의 시간으로 주어졌다.

 

, 다들 반가워! 나는 에이든 폭스(Aiden Fox).”

 

안녕. 내 이름은 그레이스 쿠퍼야.”

 

이름은 유라(Yura), 성은 이(Yi).”

 

난 데이비드 핸슨(David Hanson)이야. 뭐가 될지는 몰라도, 잘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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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0 16:07

5

 

타소니스 여행, 확실히 아주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그러나 더 어릴 때부터도 나는 충분히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조금 아쉬운 것이 있었다면 그때 통신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침 멀지 않은 집에 가족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빨리 집에 가야겠다고 판단했다.

 

나는 그 낯선 사람을 완전히 무시하고 빠른 걸음으로 말없이 집으로 걸어갔다.

 

이렇게 충분히 수상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만약 당시의 내가 불친절하고 예의 없는 어린이라고 생각했다면,

좋을 대로 생각해도 된다. 그런 논평이라면 이미 어느 정도 적응된 상태였다.

 

몇 걸음 걸어가자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친구들도 있을 텐데, 그것도 싫어?”

 

, 그건 더욱 재미있었다. 나는 잠시 멈칫했다가 그대로 뛰어갔다.

달리기 실력은 영 형편없지만 노력은 했다.

 

그런데 갑자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공포로 마비되었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 사람에 의한 것이었다.

 

그는 말했다.

 

역시 만만하지는 않네. 대부분 넘어오는데 말이지.”

 

강제로 정지해 있는 것은 답답했다. 10초나 될까 말까 하는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그래도 머리를 굴리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염력? 내 생각을 아는 것처럼 느껴진 게 기분 탓이 아니었군. 그렇다면 혹시 유령 징집인가?’

 

그 즈음 사이오닉 잠재력이 있는 어린아이들을 납치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쪽으로 생각이 미쳤다.

 

그 사람은 멈춰 있는 내 쪽으로 여유롭게 걸어와 말했다.

 

, 그건 아니야. 너한테는 그들만한 사이오닉 잠재력이 없어.

하지만 너에게는 다른 능력이 있지.

 

이를테면, 그들을 만드는 능력?”

 

뭐라고 말을 해 보고 싶었지만 그것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몸의 마비가 해제되었다.

 

염력이 급격히 풀리는 바람에 다리에 힘이 풀려 잠시 휘청했지만 곧 균형을 잡았다. 그리고 말도 할 수 있었다.

 

나는 방금 전 하고 있던 생각을 굳이 말로 옮겼다.

 

만든다니, 무슨 의미입니까?”

 

그러자 그 사람은 말했다.

 

곧 알게 될 텐데……. 그래, 이것 하나는 분명하게 해 둬야겠어.

 

우린 약물과 개조에 찌들어 있어. 실험 정신이 투철해 뭐든지 실험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기여하고 있지.”

 

그때는 그 단서에도 여전히 알쏭달쏭했다.

 

그나저나 이제 이 여행에 동의하지 않겠니?

 

완전히 억지로 가는 건 끔찍하게 싫잖아, 안 그래?

 

싫어도 따라오게 될 텐데, 차라리 좋게 받아들여.”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차피 이 압도적인 힘을 가진 사람에게 저항하는 것은 웬만한 성인도 불가능했다.

 

이런 여행은 조금도 내키지 않았지만, 나는 빠르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예감이 좋은데.’

 

 

나는 그 유령을 따라 멀지 않은 곳의 어느 신호소로 걸어갔다.

전에는 이런 게 없었던 것 같은데, 이 여행을 위해 만들어졌던 것 같다.

 

신호소에 양쪽 발을 올리자 곧 어딘가로 순간이동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런 것 많이 설치하면 좀 편하겠는데.’

 

신호소를 타고 이동해 도착한 곳에는 작은 비행기가 있었다.

비행기에 올라타자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몇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었는데 나까지 포함해서 7명이었다.

 

나를 인솔한 유령이 말했다.

 

여긴 네가 마지막이다, 쿠퍼.”

 

그리고 그는 모두를 향해 외쳤다.

 

“7명이 다 모였다. 이제 수도로 이동한다. 잘 가라.”

 

그리고 그는 떠났다. 근처에 이런 비행기가 좀 더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것들에 채울 인원을 데리러 가는 것 같았다.

 

먼저 타 있던 아이들이 내게 밝게 인사했다. 기분이 좋았다.

 

집을 갑작스럽게 떠나고 있는 것이 당황스러웠지만 그때부터는 거의 의식하지 않게 된 것 같다.

 

우리는 한동안 즐겁게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그러던 중 한 명이 말했다.

 

이봐, 우리 깔끔하게 이름 정도는 소개하는 게 어때?”

 

그러고 보니 그랬다.

 

이름을 모르더라도 얼마든지 좋은 친구일 수 있지만,

그래도 썩 괜찮은 제안이었다.

 

그 제안대로 우리는 서로 이름을 말해 주고, 짧게 하고 싶은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다시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곧 근처에 여러 장난감이 놓여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는 보드게임을 했다. 그러는 동안 비행기는 출발했다.

 

조종사가 한 명 있었는데 우리에게 별로 관심은 없어 보였다.

 

 

우리는 동족의 얼굴들이 반가워 들떠 있었다. 그러나 이 비행은 제법 길었다.

얼마나 흘렀는지, 그리고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도 없는 막막한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슬슬 걱정하기 시작했다.

 

우리를 대체 어디로 끌고 가려는 거야?”

 

돌아갈 수는 있을까?”

 

이렇게 되니까 후회되는 일이 많네. 이젠 후회해도 소용없겠지만…….”

 

그러게 말이야. 동생이랑 많이 놀지도 못했는데.”

 

그나저나 이게 뭔 상황이야. 뭐라도 짐작 가는 거 있는 사람?”

 

, 요즘 생체실험을 많이 한다는데…….”

 

안 돼! 벌써 인생 하직할 순 없어!”

 

우리는 그 안에서 유일하게 뭔가 알 것만 같았던 조종사를 쳐다보았다.

몇몇 친구들은 조심스럽게 말을 걸기도 했다.

하지만 조종사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모두들 점점 더 불안해하고 있었다. 게임도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런데 한 친구가 말했다.

 

저기, 터무니없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들어 봐.

 

우린 안 죽을 거야. 생각해 봐.

소모품이라면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이동시켰겠지.

 

그런데 여긴 쾌적하잖아. 겨우 7명이 이 함선에 있어.

생명체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빽빽하게 끼워 넣으면 50개도 실을 수 있을 텐데 말이지.

 

게다가 갖고 놀 것도 넣어 놓았잖아. 좀 전까지 게임하고 있었고.

곧 죽일 사람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배려하고 있는데?”

 

그럴듯했다. 몹시 설득력 있었다!

 

비관적으로 생각하면, 마지막으로 편하게 보내 주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연합은 그런 알량한 자비조차도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 친구 덕분에 분위기가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처음처럼 들떠 있을 수는 없었다. 여전히 우리는 두려웠다.

 

그래도 한결 침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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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8 21:51

4

 

다시 한 번 내 이름부터 명확히 해야겠다.

 

내 이름은 그레이스 쿠퍼(Grace Cooper).

 

나는 2476년에 코랄 IV에서 태어났다. 짧게 코랄이라고 불리곤 하는 곳이다.

 

코랄은 과거에 타소니스 출신 정착민들, 즉 테란 연합이 건설한 식민지였다.

 

코랄은 곧 테란 연합의 핵심 행성 13개 중 하나가 되었으며,

발전된 과학과 연구 시설로 연합의 군사 및 기술적 진보에 많은 공헌을 했다.

 

하지만, 다른 핵심 행성들과 마찬가지로 코랄 IV 역시 하나의 피지배 행성일 뿐이었다.

그것도 부패한 타소니스의 오래된 가문이 지배하는 테란 연합에 속한 행성이었다.

 

 

나는 코랄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나의 유년기는 행복했다. 행복했다고 추억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객관적으로 충분히 좋은 유년기를 보냈다.

 

생존을 위협받을 일이 없었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아였다는 것이다.

 

나의 가족들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가족과의 기억들은 내 머릿속에 잘 저장되어 있다.

지금도 종종 잠들기 전에 이런저런 기억들이 떠오르는데,

그런 때에는 말랑말랑한 감정들도 함께 찾아온다.

 

가족들에 대해서는 여기에 자세히 쓰지 않겠다.

 

좋은 추억이기 때문에 기록으로 남기고 싶지 않은 내용들이 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여행지에서 열심히 기록을 한다고 해서,

늘 가장 중요한 순간을 기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깨닫고 애석해하는 충실한 기록자들도 있다.

 

그저 나의 가족은 이 정도로만 정리하고 싶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 곧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유년기에 얻은 귀중한 자산이 있다면 그것은 혼자 놀기.

이 혼자 놀기를 기이할 정도로 발전시킨 덕에 훗날 큰 도움을 받았다.

 

나는 또래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몇몇 괜찮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어쨌든 나는 친구와 놀 일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친구가 많든 적든 행복할 수 있다. 혼자 있어도 충분히 재미있게 살 수 있다.

 

게다가 어차피 나는 진정한 혼자가 아니었다. 나에게는 든든한 가족이 있었기에

또래 친구가 좀 적다고 한들 심각한 외로움을 느낄 일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외로우면 또 어떤가. 고독에도 분명 좋은 점이 있다.

 

이제 내가 어떠한 혼자 놀기를 즐겼는지 몇 가지를 소개해 봐야겠다.

 

 

가장 즐거운 오락 중 하나는 우주 지도를 그리는 것이었다.

 

나는 우주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우주를 비롯한 거대한 세계들에 관심을 가졌고 동경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소소하게 흙바닥에 별들을 그리며 놀았다.

모래나 흙 위에 돌이나 나뭇가지 같은 것들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많은 어린이들의 소일거리인 것 같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기계의 도움을 받아 고차원의 화면에 시각화된 우주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것들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지도를 방 안에 펼쳐 놓고 그 안을 돌아다니면서 천체들을 톡톡 건드리는 것은 아주 재미있다.

 

 

몹시 즐거운 놀이가 또 있다. 얼핏 보면 별것 아니다.

생각하기. ‘상상하기라고 해도 좋다.

 

우주 지도 안에서 돌아다니는 것이 재미있는 것도 상상을 하기 때문이다.

 

그냥 지도를 보고만 있는 것도 그런대로 즐거울 수 있겠지만 상상력과 함께하면 훨씬 더 재미있다.

 

아름다운 행성들과 특별한 환경의 행성들,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을 인간들 혹은 신비한 외계 생물들의 이야기를 상상하다 보면

많은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놀라기도 한다.

 

생각하는 것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도구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굳이 필요한 것이 있다면 건강한 뇌 정도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상적인 세상에 대해 많은 생각과 상상을 거듭했었다.

 

그리고 상상하던 세상을 실제로 만나게 되었다.

상상하던 그런 세상이 맞을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확인해 볼 일이지만, 맞을 것이다. 그러면 좋겠다.

 

옛 명언 중에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라는 것이 생각난다.

오랫동안 유토피아를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유토피아에 살게 된다라고 변형하면 내 상황에 딱 맞으려나.

 

이것들 외에도 혼자 놀기의 방법은 참 많다.

 

 

2489, 내가 13세였던 때였다.

 

2489년의 어느 날에…….

 

그날도 나는 눈을 감고 상상의 세계에 들어가 있었다.

 

나는 집 근처의 한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 벤치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벤치였다.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그 벤치에 앉아 있으면 더 기발한 상상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런 곳이 몇 군데 있다.

 

그날은 마침 날씨도 무척 좋았다. 나는 비타민 D도 합성할 겸 해서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레이스 쿠퍼!”

 

누군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제법 큰 목소리로 내 이름이 불리자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아마도 그 사람은 나를 여러 번 불렀을 것이다. 짜증날 정도로 많이 불러야 했을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꼬마야, 자니? ? 이봐, 내 말 들려? 눈 좀 떠 봐! 그레이스 쿠퍼!”

 

그렇지만 정말로 무시했던 건 아니었다. 뭔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

특히 다른 세계에 여행을 가 있을 때는 여러 번 불러도 못 들을 때가 있다.

 

다행히도 그 사람은 내가 정말 못 듣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사람이다.

 

어쨌든 내 이름을 듣고 화들짝 놀라서 순간적으로 경련을 일으키면서 눈을 떴을 때

내 앞에 있던 사람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내 이름을 불렀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 사람은 성인 남성이었고 키가 컸다. 그는 나에게 아주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무슨 생각을 하던 거니? , 우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구나.”

 

이 사람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맞히자 더욱 흥미로웠다.

 

그러나 나는 일단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낯선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친절하게,

그것도 어린 아이에게 말을 걸어온다면 조심해야 한다는 것쯤은 의식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나를 안심시키려는 투로 이렇게 말했다.

 

이런,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그렇게 굳어 있지 않아도 괜찮아.”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타소니스? 타소니스 구경시켜 줄까? 타소니스에 가 보고 싶지 않니? 날 따라오렴.

내가 맛있는 것도 사 주고, 실컷 구경시켜 줬다가 다시 이리로 데려다 줄게. 어때, 재밌겠지?”

 

마침 나는 타소니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타소니스는 당시 테란 연합의 수도성이었다.

그때까지 타소니스에 가 본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언젠가 구경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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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0 00:20

3

 

그레이스 쿠퍼(Grace Cooper).

 

2504년 새해 언덕 위에서 아주 오랜만에 별을 보고 있던 사람이다.

 

그리고 나다.

 

앞부분에는 내가 거의 등장하지 않았으니 라는 말을 하지 않고도 버틸 수 있었지만 이제는 안 되겠다.

 

 

내 친구 잭은 억지로 침착한 척을 했다.

우리는 어제 만났던 친구들처럼 평범하게 인사했다.

 

하지만 잭은 몇 초 안 지나서 발광하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에는 미지근한 반가움을 느끼는 정도였지만,

친구의 상태에 곧 전염되었다.

 

우리는 평소보다 한 옥타브 정도 높은 목소리로

 

얼마만이야, 284!” “참 극적인 상봉인데, 220!”

 

하고 인사했다. ‘220’‘284’에 대해서는 좀 나중에 이야기하겠다.

 

그리고 우리는 하이파이브를 여러 방향으로 돌려가며 연속 5회 실시했다.

그리고 정신나간 것처럼 헤헤 웃었다.

 

오랜만에 만난 두 친구의 상태를 글로 쓰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잭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말은 여전히 빨랐다.

 

이야, 널 여기서 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그나저나 뭔 일이 있던 거야? 연락이 갑자기 끊긴 데다

그냥 안 받는 것도 아니고 주소가 없어진 건 왜 그런 거야?

 

그리고 에반스 씨가 말도 없이 사라졌다가 너랑 같은 때에 돌아오고…….

 

하여튼 뭐가 뭔지 모르겠네. 설명 좀 해 줘!”

 

나도 빨리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고 싶었지만 좀 길어질 것 같아서 주저되었다.

잭은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말했다.

 

, 이야기는 나중에 들려줘도 될 것 같아. 일단 여기 친구들을 소개해 줄게.

너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나도 들려 줄 이야기가 많아.”

 

그래서 우리는 새해 파티에 합류하기로 했다.

 

원래 살던 존재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과연 나는 개인적인 생활은 가능해 보이지 않는 이 새 터전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을까

 

언덕을 내려와 걷는 동안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일들에 대한 갖가지 걱정거리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파티에 도착해 모여 있는 이들을 만나자마자,

나는 이런 걱정은 조금도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테란 중에는 아는 얼굴도 꽤 있었다.

하지만 일부 테란, 그리고 프로토스와 저그들은 완전히 초면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새로운 이방인을 환영했다.

 

새로운 테란이네요! 반갑습니다! 내 이름은 헤이든입니다.”

 

예전에 본 적이 있는 제이콥 윌슨 씨도 한마디 했다.

 

우리는 새로운 얼굴의 등장을 좋아하죠. 여긴 때때로 무료할 정도로 평화로우니 말입니다!”

 

꼬마 저글링 친구도 있었다.

 

과학자 형 친구라며? 나는 타키온이야! 누나는 물리 좋아하니까 알고 있지? 빛보다 빠르다는 뜻이라는 걸!”

 

파란 천을 두른 프로토스가 멋지게 팔을 펄럭이며 환영해 주었다.

 

반갑소, 여행자여! 나는 켈로서스라네. 그리고 이쪽은 기사단 동료들이지!”

 

작은 몸집의 고위 기사가 말했다.

그 고위 기사의 이름이 니키타라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히히, 이 테란도 나와 많은 대화를 할 수 있겠어…….”

 

많은 이들이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이런 인사말들은 가면을 쓰고도 건넬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이 존재들은 가면을 쓰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과학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그냥 느낌이 그렇다.

느낌에 의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에는 확신해도 될 것 같다.

 

그렇다면 나도 더 이상 가면이 필요 없으려나.

 

웃어야 할 것 같은데 괜히 눈물이 나려 했다. 그때 잭이 말했다.

 

어때? 여기서의 삶도 재미있겠지?”

 

그러자 나는 빠르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나는 환하게 웃었다.

 

고맙게도 제이콥은 이렇게 말했다.

 

, 새 동지에게 궁금한 것이 많겠지만 질문은 조금 미뤄 두고, 일단 파티를 즐기도록 합시다!”

 

그렇게 나도 그들과 함께 파티를 즐겼다.

 

타키온은 풀피리를 불었다. 나도 재미있어 보여서 배웠지만 그다지 잘되지 않았다.

좀 더 연습하면 될 것이다. 타키온에게는 이런 소소하지만 재미있는 재주가 많았다.

 

레이아와 니키타는 독특한 양궁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화살을 만지지 않고도 움직일 수 있었다.

그 능력을 그저 오락거리고 쓰고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차원장인 카슨은 재미있는 초소형 로봇들을 보여 주었다. 그 로봇들은 웃긴 춤을 추었다.

 

 

얼마간 나는 텐트를 치고 지냈다. 행성 구경도 실컷 할 수 있었다.

다른 주민들의 이름도 열심히 외우고 있다.

 

며칠 후에 내 집이 완성되었다. 알렉스가 지은 집이었다.

알렉스는 훌륭한 기술자이다. 그는 이곳에서 많은 집을 지었고,

뭔가 수리할 것이 생기면 대개는 그의 몫이 된다.

 

 

이제 내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 이야기는 새로운 친구들에게도 들려 준 이야기이다.

 

여기에는 나의 의견이 반영되어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들에게 말할 때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말하려고 노력했다.

 

내용들 중에는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나중에 알게 된 것도 있다.

 

그런 것들은 대부분 발레리안 멩스크가 알려 준 것이다.

그는 자치령의 황태자이고 조작된 언론을 접하는 민간인들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잭이 알려 준 것들도 많다.

중립적이고 비교적 민주적인 우모자 보호령 사람인 잭은

테란 연합, 테란 자치령의 민간인이었던 그 당시의 역사를 나보다는 객관적으로 알고 있었다.

 

당연히 나 자신의 판단도 있다.

다행히도 의식적으로 다양한 관점으로 현상을 바라보려고 애쓰면 웬만큼은 가능해진다.

 

그럼 이제 내 인생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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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5 19:01

2

 

그날 밤이었다.

 

레이아는 몰래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려 노력했고 거의 성공했지만

집을 나가기 직전에 난로를 발로 찼고 큰 소리가 났다.

 

그 때문에 샬롯이 부스스 깨어나서 레이아를 발견했다.

 

어디 가? 다 자고 있을 시간인데.”

 

레이아는 변명거리를 생각하려 했지만 포기했다.

 

행성 밖으로 갈 거야.”

 

샬롯은 그 말을 듣고 완전히 잠이 깨 버렸다.

 

에에? 갑자기 왜?”

 

발레리안 멩스크(Valerian Mengsk)가 부탁한 게 있어서.”

 

어떤 부탁인지 물어보면 곤란할까? 그렇겠지?”

 

레이아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나중에 알게 될 거야.

 

그분이 나한테 베풀어 준 걸 생각하면 아주 쉬운 일이야.

 

신경 억제제를 제거해 나의 빼앗긴 인성을 찾아 주고,

혼란을 덜 느끼게 하기 위해 기억과 감정이 서서히 돌아오도록 하는 배려까지 했지.

 

게다가 내 존재까지 없애 줬으니!

내 동기인 노바는 지금쯤 자치령에서 언론을 타고 있을 테지만

나는 그 사람 덕에 내가 원하는 조용한 삶을 살게 됐어.

 

정말이지, 그 아버지와는 참 달라. 적어도 자기 사람은 챙기잖아.

 

내가 거의 민간인뿐이었던 AX708에서 경호원 역할을 했던 것도 그래서고,

이번에는 또 다른 임무를 수행할 거야.”

 

샬롯은 그저 들어 주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보호막이 있는데 어떻게 나가려는 걸까?’

 

레이아가 그 생각을 듣고 말했다.

 

그건 니키타한테 부탁해 놨으니 알아서 해 줄 거야.

 

어쩌면 꽤 오래 나가 있을 것 같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내가 왜 없는지 물어보면 적당히 말해 줘.

 

네가 아는 대로 다 말해도 괜찮아.

 

굳이 소란스럽게 하고 싶지 않아서 몰래 가는 거지만,

딱히 비밀로 할 것도 없거든.

 

괜히 나 때문에 잠 깼네. 오늘은 늦잠 좀 자. 늘 부지런했잖아?”

 

샬롯은 인사했다. “잘 가.”

레이아는 답했다. “잘 있어.”

 

레이아는 집을 나섰다. 그녀는 창고에서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그리고 집 쪽을 잠시 돌아본 뒤 작은 비행기에 탔다.

 

그 비행기는 AX708의 정비 기술자 알렉스 쿡(Alex Cook)이 창고에 돌아다니는 잡동사니로 만든 경비행기이다.

 

심심풀이로 만든 것인 데다가, 재료도 부족해 내구성이 약하고 공격력이 없긴 하지만

이동에 있어서는 그런대로 쓸 만했다.

 

레이아는 비행기 조종법을 잘 몰랐지만 어느 정도의 자동 조종이 가능했던 덕분에

별 탈 없이 행성을 떠날 수 있었다.

 

 

1주가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레이아는 돌아오지 않았다.

주민들은 그녀를 걱정했지만 곧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2504년 새해가 가까워 오자 주민들은 나누어 먹을 큰 케이크를 만들었다.

 

프로토스들은 케이크를 먹을 수는 없겠지만 함께 새해를 축하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것이다.

 

샬롯은 케이크를 장식할 파인애플 사탕을 만들며 생각했다.

 

이 케이크를 레이아와 같이 먹을 수 있어야 하는데! 곧 돌아오겠지…….’

 

발 빠른 장난꾸러기 저글링 타키온(Tachyon)은 샬롯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려 했지만

(Tom)이 샬롯에게 말하려는 시늉을 하자 관뒀다.

 

두 어린 저글링은 파인애플 사탕을 하나씩 얻어먹었다.

 

 

25031231일 밤에 레이아는 돌아왔다.

 

그녀는 딱 좋은 시간에 돌아왔다. 새해 파티가 시작되기 직전에 돌아온 것이다.

그렇게 레이아는 아슬아슬하게 파티에 합류했다.

 

샬롯은 몹시 반가워했다.

그녀는 레이아가 돌아오면 무엇을 하고 온 것인지 물어볼 생각이었지만 정작 돌아오자 잊어버렸다.

 

그들은 가장 정확한 시계인 차원장인 카슨(Carson)의 시계로 새해 카운트다운을 했다. 12시 정각이 되었다.

 

그날은 250411일이 되었다.

 

주민들은 박수를 쳤다. 타키온이 폭죽을 터트렸다.

폭죽이 레이아의 얼굴에 맞을 뻔했지만 레이아가 민첩하게 몸을 숙인 덕에 별일 없었다.

 

그들은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케이크 등의 맛좋은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레이아는 갑자기 일어나 잭에게 다가가더니 그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말했다.

 

저쪽 언덕에 가 봐요.”

 

잭은 의아해하며 말했다. “갑자기 왜죠?”

 

가 보면 압니다.”

 

잭은 레이아가 말한 언덕 쪽으로 갔다.

 

키 작은 풀과 작은 꽃들이 있는, 밤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도 떠오르는,

꼭대기에 앉아 감상에 빠지기 딱 좋은 곳이었다.

 

잭은 언덕 아래에 섰다. 언덕 위에 사람의 형체가 서 있었다.

 

잭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언덕을 올랐다.

 

언덕 위의 사람은 그를 보고 있었다. 서 있던 그 사람은 편하게 앉았다.

 

잭은 꼭대기에 올라갔다.

 

먼저 꼭대기에 올라가 있던 사람의 얼굴이 분명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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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5 21:25

1

 

2503년 연말의 한 하루였다.

 

이건 좀 애매하다. 정확한 날짜를 쓰고 싶어졌다.

 

25031222.

 

작고 아름다운 외딴 행성의 주민들은 즐겁고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다.

 

항상 평화롭기만 한 무료한 일상도 좋겠지만,

종종 위기도 있고 우연한 사건도 있다면 그 평화가 더욱 빛나는 것 같다.

 

 

일단 잭 스미스(Jack Smith)를 만나 보자. 그는 우모자 출신으로 프로토스에 대해 연구하던 사람이다.

 

연구 자료를 두고 행성에 온 뒤로 그가 과학자로서 일할 일은 별로 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는 살아 있는 연구 자료들과 교류하게 되었고,

한결 더 활기차게 살게 되었다.

 

그의 지식은 아주 유용하다.

그는 프로토스 주민들조차도 잘 알지 못하는 프로토스의 신비한 고대 과학 기술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지금 잭은 친구인 그레이스 쿠퍼(Grace Cooper)에게 연락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연결이 되지 않는다.

 

평소에도 그레이스는 종종 연락이 온 것을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에

잭은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좀 바쁜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오늘따라 왜인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한참 후, 그가 포기하려던 참에 어떤 메시지가 재생되었다.

 

IP 주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잭은 방금 전보다 훨씬 더 큰 불길함을 느꼈다. 그는 길지도 않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말했다.

 

이 친구한테 뭔 일이 생긴 거야?”

 

그렇게 말하는 동시에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니면 어떤 극적인 연출이려나? 그런 거면 좋겠는데…….’

 

 

한편, 고위 기사단은 갑자기 하던 일을 멈추었다.

레이아 에반스(Leah Evans)와 함께 염력 양궁을 하던 니키타(Nikita)도 마찬가지였다.

 

레이아는 니키타가 예언능력으로 뭔가를 느꼈을 때도

종종 그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화살을 만지작거리며 기다렸다.

 

그런데 잠시 후 니키타가 말했다.

 

뭐야 이건?”

 

화살을 볼펜 돌리듯 돌리고 있던 레이아는 뭔 일인데?”라고 물었다.

 

보호 체계가 몽땅 사라졌어. 왜지? 대체 함선에서 뭔 난리가 났던 거야?”

 

그러자 레이아가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나는 모르고 너만 아는 거야? 난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그야, 만들었으니까. 이제 같이 만든 친구들이 곧 모일 거야.”

 

그리고 니키타는 어딘가로 이동했다. 레이아도 따라갔다.

 

 

이동한 곳에는 많은 고위 기사들이 모여 있었다. 고위 기사들은 이 사태에 대해 대화 중이었다.

그들은 먼저 모든 주민에게 알리기로 했다.

 

곧 행성의 주민 모두가 보호 장치의 실종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위 기사들은 그들끼리 잠시 동안 대책 회의를 했다.

 

얼마 후 한 고위 기사가 앞에 나서서 말했다.

그는 말하면서 과장되게 팔을 흔들었다.

 

이곳을 수호하던 장치들이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지금으로서는 우리 고위 기사단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대책은 마련되어 있습니다.

 

고위 기사단의 힘으로 보호막 정도는 임시로 만들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임시방편이니 방법을 알아봐야 하겠지만요.

 

그리고 보호 장치가 없어도 우리에게는 우리의 행성을 지킬 힘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이 고위 기사의 이름은 켈로서스(Kelossus)이다.

그는 727세의 노련한 전사이며 행성 고위 기사단의 리더이자 스승으로 존경받고 있다.

 

켈로서스는 말을 마치자마자 임시 보호막을 만들 준비를 시작했다.

 

니키타가 말했다.

 

사실 이런 작은 행성의 보호막쯤은 나 혼자도 만들 수 있는데.”

 

근처에 있던 템페스트가 이 중얼거림을 듣고 말했다.

 

, 대단한데. 그래도, 여럿이 힘을 모으면 좀 더 안정적이겠지.”

 

그렇긴 하지.”

 

고위 기사단은 둥글게 둘러섰다.

켈로서스가 가까이서 지켜보던 주민들에게 말했다.

 

위험할 수 있으니 좀 더 거리를 둬야 합니다.”

 

모든 고위 기사들이 준비되자 켈로서스가 외쳤다.

 

, , 하나.”

 

그러자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잠시 후 기사단이 이룬 원에서 강한 에너지가 생성되더니 빛을 내며 공중으로 올라갔다.

 

공중으로 올라간 에너지는 넓게 퍼지며 행성의 하늘을 둘러쌌다.

에너지는 밝은 빛을 내며 점점 더 공중을 덮었다.

 

보호막이 완성되자 빛이 점점 약해지더니 완전히 투명해졌다.

나뭇가지를 흔들던 바람도 잠잠해졌다. 하늘은 몇 분 전의 하늘과 다를 것이 없었다.

 

지켜보던 주민들은 이 광경을 보고 신비함과 존경심을 느꼈다.

 

특히 행성에 오기 전에 우모자에서 프로토스의 과학 기술을 연구하던 잭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같이 구경하던 쉘리 콕스(Shelly Cox)에게 말했다.

 

프로토스가 가진 힘은 정말 신기합니다.

이렇게 강력한 에너지장을 즉석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존경스럽군요.

어떻게 이런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쉘리가 맞장구쳤다.

 

그러게요. 이런 신비한 종족에 대해 연구하던 스미스 씨도 대단해요.”

 

하하, 아닙니다. 같은 우모자 사람이었으니 잘 아시겠지만

우리의 프로토스에 대한 존경심과 호기심은 굉장하잖아요? 관련 연구도 활발하고요.

정작 그쪽에서는 우리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 같지만…….”

 

이런 대화들이 여기저기서 오고 가던 도중에 켈로서스가 말했다.

 

보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충분히 강력한 보호막이 만들어졌습니다.

한 번 시험을 해 봅시다. 혹시 원거리 무기를 갖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레이아가 말했다. “제가 쓰던 총이 있습니다.”

 

켈로서스는 총을 가져와 달라고 했다. 레이아는 창고에서 짧은 권총을 가져왔다.

오랫동안 쓸 일이 없던 총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고 그녀는 먼지를 털어냈다.

 

켈로서스는 아무 곳이나 허공을 향해 총을 쏘라고 했다.

레이아는 한 손으로 총을 쐈다.

 

총알이 발사되고 몇 초 후에 하늘에서 순간적으로 번개 비슷한 빛이 났다.

보호막이 총알을 분해해 버린 것이었다. 켈로서스는 말했다.

 

더 강한 공격도 이렇게 될 것입니다.

이 보호막을 제거하고 다시 생성하는 일에는 이것을 생성하는 데 참여한 고위 기사 모두가 필요합니다.

물론, 살아 있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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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1 22:53

프롤로그

 

어느 평범해 보이는 날, 코랄 IV 인근의 한 우주 정거장.

 

정거장에는 많은 여행객이 있다. 그들이 이곳에 있는 목적은 다양하지만,

여행에 들떠 있는 민간인 여행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범상치 않은 한 소녀가 있다.

적갈색 단발머리의 작고 가냘픈 이 소녀는 한 손에 칼을 들고 있었다.

 

이 소녀는 한 성인 여성을 연행하고 있다.

 

그런데 또 다른 누군가가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그 누군가는 검은 머리를 높이 올려 묶고 있었고,

소녀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지만 역시 앳된 모습이었다.

 

오랜만이네, 언니.”

 

그래, 그렇지……. 친구로서의 반가운 재회 이전에 먼저 할 일이 있겠는데.”

 

그 일이란 게 뭐야?”

 

길게 말할 것도 없어. 그 사람은 내가 데려가야 해.”

 

그건 곤란한데. 내가 받은 명령이 있어서.”

 

무슨 명령? 이런 평범한 민간인을 상대로.”

 

글쎄, 그저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이 사람이 숨겨 둔 파일을 빼앗고 죽여야 하거든. 그게 내가 받은 명령이지.”

 

네 말대로 평범한 사람은 아니네.

자기를 죽이겠다는 말을 듣고도 동요가 없는 걸 보니까. 하지만 나도 명령이 있거든.”

 

그래? 언니의 임무는 뭔데?”

 

나는 이 사람을 죽이려는 너를 막아야 해.”

 

그리고 함께 탈출하겠군.”

 

그렇지.”

 

그렇다면 고작 명령을 따르기 위해 우린 싸울 수밖에 없는 걸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

 

-

 

총성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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